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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08. 2022

빈말

빈말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속이 비어있는, 실속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 팽배하다 느껴지며 적응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도 안다. 빈말을 쓰는 상황과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는 이해한다. 그럼에도 나는 빈말을 혐오한다. 가능하면 빈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고도 싶다. 공허한 거짓말에 신물이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나는 그렇게 꿈같은 세상을 꿈꿔 본다.


때로는 진실이 커다란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말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다. 일단은 엄연한 사실이니까. 그런데 두 가지 이유에서 결국에는 고개를 가로젓고 싶어진다.


하나는 상처받는 이유에 있다. 진실이 상처를 줄 때, 우리는 진실 그 자체 뿐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진실이 드러나는 상황에 상처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의 언어가 진실인지와는 별개로 작용한다. 단지 그런 상황이, 단어가, 사람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처인 것이다. 그래서 빈말이 없어진다면 상처는 진실 그 자체로부터만 찾아올 것이며, 당연히 그 상처는 지금처럼 크지 않으리라 감히 상상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거짓의 한계에 있다. 빈말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하려 해도 결국 거짓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빈말은 때로 청자를 더욱 기분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나중에 거짓의 껍데기가 벗겨지면 배신감까지 더해져 더 큰 상처를 준다. 빈말의 목적 자체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달콤한 거짓도 더러운 진실보다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과감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거짓은 거짓을 낳고, 그렇게 더해진 거짓말은 언젠가 드러나고야 만다는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때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진실을 두려워하고 외면하는 건 아닐까? 좋은 게 꼭 좋기만 한 걸까? 거짓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면, 빈말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거짓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체 왜 거짓이 진실보다 인정받는 경우가 존재하는 걸까? 상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마음과, 진실을 진실이 아닌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오해 때문은 아닐까?


나는 정말 미치도록 빈말이 싫다. 솔직함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진실에 상처받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기에 나는 원치 않지만 학습된 빈말을 정말 가끔 사용한다. 그래서 왜 빈말을 사용하냐고 내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보여주며 말하고 싶다. 당신이 상처받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는 결코 빈말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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