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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08. 2022

숱하게 지나쳐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며

집으로부터 비교적 먼 거리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하루에 약 40분 정도를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보냈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는 하루에 무려 2시간 30분 정도를 흔들리며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보냈었다. 그 시간들을 다 합쳐보면 얼마나 될까? 굳이 계산해 보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시간일 거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게 긴긴 시간들에 도대체 뭘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공상의 세계에 빠져 버스에서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지하철에서는 차량 내부의 모습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것 같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는 행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처럼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었다. 그러다가 공상이 끝나면 흥미로운 핸드폰 게임을 켜고는 거기에 빠져보기도 하며 시간을 죽여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내가 시간을 죽여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따금 의식의 흐름이 지금 이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는 부분에 다다를 때면, 영어단어를 외워볼까 따위의 며칠 못 가 포기하고 말 행위를 몇 가지 떠올려보다가 이내 다시 별 의미 없는 공상을 지속하곤 했다. 나는 흥미가 없으면 의지를 갖기 어려운 나의 특징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잠깐 사족을 붙이자면, 그래서 고3 시절 무슨 수로 그렇게 집중해서 공부를 했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 오너드라이버가 된 지 10년쯤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틈만 나면 핸드폰을 붙잡고 글을 쓰게 되면서 운전을 하며 출퇴근하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면 그 시간들에 조금이라도 더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자주 맴돌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십수 년 전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숱하게 지나쳐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처럼 틈만 나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더 빨리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있었다면, 그 많은 시간들에 더 많은 글을 썼다면, 그래서 더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었다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의 끝에, 나는 더 이상 후회하지 말고 10년 뒤에 알아챌 수도 있었던 이 사실을 지금이라도 알아채게 된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숱하게 남은 많은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지나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합리화하며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리하여 언젠가 먼 훗날에, 그때라도 글을 쓰기 시작하길 잘했다며 만족할 날이 찾아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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