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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10. 2022

시간에 관한 조금은 이상한 변명

사람들은 언젠가 시간에 대한 변명을 반박하기란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미뤄진 이유에 대한 답변으로,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시간이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변명의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렇게 반박하기 어려운 변명을 들은 상대방은 그저 다음에 시간이 나면 해결해 달라고 말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해결에 필수적이면서도, 어디선가 구해올 방법은 없는 자원인 시간이 부족했다는데, 거기에 대고 뭐라고 더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이 변명은 모든 이에게 퍼져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효과적인 변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변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들은 이내 또 다른 활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이 변명이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똑같은 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진짜 원인을 애써 찾을 필요 없이, 부족했던 시간을 핑계 삼으면 스스로가 납득하기에도 아주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당면한 문제를 일단 가라앉히고 내키는 행동을 마음껏 취하다가도, 문제가 다시 떠올라 자신을 옭아매면 시간이 없었노라고 속으로 되뇌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 반박할  없는 변명존재할  없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변명의 당위성에 의문을 품고 반박할  있는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리고  방향을 향해 놓인 실마리를 손에 쥐려면 시간이라는 자원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원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수단으로도 더 사용할 수 없지만, 덜 사용할 수도 없다. 또한 시간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사용하지 않고 아껴둘 수 없이 막연하게 흘러가고 또 흘러간다. 그러므로 시간이 없었다는 건, 결국 그 시간을 어딘가 다른 곳에 사용했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용이 자신의 선택이었다면,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저 우선순위가 더 높은 행위가 존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은, 단순히 다른 행위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듣기 좋게 꼬아 놓은 조금은 이상한 변명인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되뇔 때, 그 변명을 너무나 쉽게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속에 품고만 있는 일을, 꿈을, 소망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현실에 지쳐 힘든 몸을 누이기 바빴던 것일까?


성취란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시간을 쥐어 짜내 활용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값진 열매라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결국 자신이 꿈을 이루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싶은 것인지 그 여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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