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는 모두 다르고, 그렇게 다른 만큼 좋은 사람의 기준도 다르다. 이는 극단적으로, 누군가는 한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누군가는 더없이 미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결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는 없다. 즉,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미움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미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까?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럴 거라 호언할 수 있을까? 이를 긍정한다면, 나는 어리석은 생각이라 감히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부단히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사실 그것이 그리 대단한 의미는 아니라고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란다면, 너무 위험한 바람일까?
만일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되돌리려 시도하고 있다면, 그게 무의미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시도가 다른 이로부터 미움받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또한 그 시도가 자아를 억압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관계 속에서의 괴로움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과도하게 노력할 때 불현듯 찾아온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당신은 결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 다만, 애초에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