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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n 24. 2022

모임을 주도한 경험이 내게 남긴 것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과 제법 친해진 나는, 이렇게 친해진 이들끼리의 커다란 모임이 이루어지면 재밌겠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들어볼까도 싶었지만, 내게는 분명 동료들과의 모임을 내심 기다리는 이들이 제법 많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또 거절당하면 좀 어떤가? 그런 요청이 별로 대단한 요청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월 모일 친목을 위한 사원 모임을 개최하려 합니다. 참석여부를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과감하게 단체메일을 보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스무 명 정도 되는 인원이었을 거다. 나는 언제나처럼 낙관적인 기대를 품고 사람들의 메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계획일 전날까지 메일을 회신해 준 사람은 세 명 정도로 매우 적었다. 한 명이 참석, 나머지는 불참이었다. 나는 적잖이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당일이 되자 놀랍게도 사람들로부터 메일과 카톡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오늘 모이는 거예요?” “몇 명이 오나요?” “장소는 어디인가요?” “몇 시까지 가면 되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눈치를 보던 사람도, 간 보던 사람도, 망설이던 사람도, 상황에 따라 참석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그저 고마웠다. 다양한 질문이었지만 대부분 참석에 긍정적인 의견들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리하여 꼭 참석하겠다고 말한 인원을 나까지 일곱 명 모을 수 있었다.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장소와 시간을 공지한 나는 모임 장소에 가장 먼저 나와 사람들을 기다렸다. 혹시 일곱 명 중 두 명이라도 못 나오면 어쩌지? 하는 상상이 떠올랐다.


내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임이 시작된 지 한 시간 안에 열 명 정도의 인원이 참석했다. 나는 속으로 크게 안도했다. 그렇게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작 모임을 주최한 나는 뒷전이었지만(…) 진심으로 기쁘고 뿌듯했다. 그리고 한 시간 안으로 몇 명 정도의 인원이 더 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1차에서만 3시간가량을 죽치고 앉았다. 더러는 소주잔을, 더러는 맥주잔을, 더러는 음료수잔을 비워가며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리고 긴 모임이 끝나고 자연스레 총무가 된 내가 결제를 하고 식당을 나오자 누군가 말했다.


“대리님이 자리 만들어 주셔서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다음에 또 모였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거기 있던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말을 내게 건넸다. 회사생활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상당히 뜻깊은 순간이었다. 뜻깊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도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던 바를 충족시켰다는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더 가까워지길 원하고 있었고, 그걸 내가 포착하여 이뤄낸 것이다.


이후로도 나는 적지 않은 모임을 주도했다. 그리고 좋은 인연을 뒤로하고 이직하고 난 다음에도 이전처럼 사람들을 불러내곤 했다. 항상 많은 이가 참석한 건 아니었지만, 항상 누군가는 참석했다. 그 사실은 내게 여전히 망설일 필요 없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쉽게도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모임을 주도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서서히 다시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언제나 즐겁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도 최대한 즐거운 요소를 찾아낼 수는 있다. 그리하여 만남은 최소한의 즐거움이 된다. 참석을 강요하는 환경이 아니라면,(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겠지만) 결국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망설일 필요는 없다. 모임의 주도가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그 경험은 궁극적으로 실패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가벼운 마음을 가질 필요도 있다. 장담하건대, 분명 어떤 시도는 생각보다 훨씬 성사 가능성이 높은 시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꼭 모임을 주도하는 시도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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