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제법 그런 경향이 있지만, 특히 예전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어른들 중에 제사를 중요시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제삿날이 되면 허리가 휜 아내와 고분고분한 며느리들을 재촉해 죽은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들게 하곤 했다.
조상이 얼마나 먹성이 좋은지, 참 많이도 만들었더랬다. 제사가 끝나고 다 식어빠진 제사 음식을 집에 싸가서 데워 먹기도 했지만, 고생한 바에 비하면 수지 남는 장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음식을 만드는 고생이라도 알아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그럼에도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조심스럽게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의견이 표출되기라도 하면 바로 핀잔이 날아들기 마련이었다.
"그런 게 어딨어. 그래도 제사는 지내야지."
웃기는 건, 그렇게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반들 중에 제사 음식이며 뒷정리를 열심히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의식이 꼭 무의미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유의미한 일이라면, 본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리고 절하면 될 일이다. 그것을 왜 남에게 강요할까?
그래서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주장의 핵심 쟁점은, [전통을 꼭 지켜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전통을 지키려는 이들은 그렇게 지키는 행위의 준비를 남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은가]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는 보수적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이들의 인성의 문제라 할 것이다.
조상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문제의 답은 쉽게 나온다. 혹시 그렇게 떠나간 이들이 이런 사태를 알고 있으면서도 꼭 제삿밥을 얻어먹고 싶어 한다면, 그런 이기적인 이들을 위해 신경 써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다. 또한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자손들에게 강요하면서까지 얻어먹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면,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떠나간 이들을 떠올리는 의식, 물론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식이 남은 이들이 희생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시대가 변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지내더라도 간단히 음식을 사서 준비하거나 가족 친지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의미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바람직한 변화다. 그 와중에도 그런 음식을 준비하는 이는 보통 따로 있지만, 어떡하랴. 이렇게 기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수십 년이 걸린 것을. 아직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