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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ug 12. 2022

제사 이야기

지금도 제법 그런 경향이 있지만, 특히 예전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어른들 중에 제사를 중요시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제삿날이 되면 허리가 휜 아내와 고분고분한 며느리들을 재촉해 죽은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들게 하곤 했다.


조상이 얼마나 먹성이 좋은지, 참 많이도 만들었더랬다. 제사가 끝나고 다 식어빠진 제사 음식을 집에 싸가서 데워 먹기도 했지만, 고생한 바에 비하면 수지 남는 장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음식을 만드는 고생이라도 알아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그럼에도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조심스럽게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의견이 표출되기라도 하면 바로 핀잔이 날아들기 마련이었다.


"그런 게 어딨어. 그래도 제사는 지내야지."


웃기는 건, 그렇게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반들 중에 제사 음식이며 뒷정리를 열심히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의식이 꼭 무의미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유의미한 일이라면, 본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리고 절하면 될 일이다. 그것을 왜 남에게 강요할까?


그래서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주장의 핵심 쟁점은, [전통을 꼭 지켜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전통을 지키려는 이들은 그렇게 지키는 행위의 준비를 남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은가]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는 보수적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이들의 인성의 문제라 할 것이다.


조상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문제의 답은 쉽게 나온다. 혹시 그렇게 떠나간 이들이 이런 사태를 알고 있으면서도 꼭 제삿밥을 얻어먹고 싶어 한다면, 그런 이기적인 이들을 위해 신경 써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다. 또한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자손들에게 강요하면서까지 얻어먹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면,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떠나간 이들을 떠올리는 의식, 물론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식이 남은 이들이 희생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시대가 변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지내더라도 간단히 음식을 사서 준비하거나 가족 친지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의미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바람직한 변화다. 와중에도 그런 음식을 준비하는 이는 보통 따로 있지만, 어떡하랴. 이렇게 기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수십 년이 걸린 것을. 아직은  많은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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