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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09. 2022

운의 총량

확률은 낮지만 별 쓸모는 없는 행운을 맞았을 때, 이를테면 모 라면의 봉지를 뜯었는데 다시마가 3개쯤 들어 있을 때 엄한 데에 운을 써 버렸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운에 소모성이 있다고 인식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물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우스갯소리고, 운의 소모성이 있는지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운이라는 개념이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만일 운이 있다면 그 양이 정해져 있을까 하는 의문 자체는 흥미롭다.


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운 좋은 일이 일어나면 운의 총량이 줄어 다음에 운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낮아진다.’ 이는 운명의 신은 공평하다는 의미와도 비슷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마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행운과 불운은 꼭 비슷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악재가 겹치는 등 몰려오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하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운이 정말로 존재하고 불공평하게 찾아온다 하더라도, 그런 불공평을 탓해봐야 달라질 건 별로 없다. 운이란 애초에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이를 과도하게 신경 쓰는 행위는 자신의 운명을 운에 맡겨버리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운에 대한 마음가짐은 항상 긍정적이면서도 가벼워야 한다.


실제로 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을 리는 없겠지만,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 이런 마음가짐에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믿음 안에는, 여태까지 운이 좋았다 해도 언제든 내리막길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고, 반대로 운이 나빴다 해도 언제든 좋은 날이 찾아올 수 있으므로 희망을 버리긴 이르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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