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May 11. 2023

단 30분의 시간이라도

200자 원고지로 100매 정도 분량이 되는 단편소설을 완성시킨 적이 있다. 분수에 안 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아마추어에게는 짧지만은 않은 분량의 글을 완성시켰다는 경험은 지금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중 가장 크게 도움이 됐던 부분은 바로 마음가짐의 변화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일단 손을 대 진전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 비단 글쓰기뿐 아니라 뭔가를 시작하고 마무리지어 완성시켜야 할 때마다 나는 이를 떠올린다.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들 저마다의 할 일이 있고, 시간이 부족한 저마다의 사유가 있다. 그런 와중에 일상에 틈을 내어 뭔가를 새로이 시도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고로 바쁜 사람일수록 자투리시간의 활용이 중요하다. 실로 성취의 여부는 모두 여기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그랬다. 퇴근하여 씻고, 저녁을 먹고, 고양이들 밥을 좀 챙겨주고, 간단하게 정리도 좀 하고 나면 벌써 9시였다. 회사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TV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탐험하는 등 취미 내지는 여가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나면 금세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이런 와중에 소설을 완성시키겠다고? 처음에는 꿈같은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공모전의 마감기한이 다가올 때쯤, 이러다가는 언제나처럼 시작도 못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진득하게 늪처럼 자리 잡고 있는 루틴을 어떻게든 깰 필요가 있었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느낌으로 글쓰기를 일상 속에 찔러 넣어야 했다.


회사에 출근하여 점심을 좀 빨리 먹고 나면 30분쯤 시간이 남을 때가 있었다. 업무에 치어 바쁜 날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드물게 평소보다 여유 있는 날이면 마찬가지로 30분쯤 시간이 남기도 했다. 집에 와서 여가시간을 30분쯤 아끼기도 했다. 큰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시간들에 주목했다.


다소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일단 시작하자 의식이 자꾸 글쓰기로 향했다. 굳이 거창하게 마음먹지 않더라도, 짧게나마 시간이 생기면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어 글쓰기 어플을 켰다. 생각이 정리되면 몇 글자라도 글을 쓰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이 지나자 뭐라도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가 눈에 띄자 도중에 손을 놓기가 더 어려웠다. 욕심이 났다. 끝까지 완주하지 않으면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았다. 계속 걸었다. 끝이 보이자 더욱 힘이 났다.


결국 소설을 완성시키고 난 다음 최종적으로 글을 제출했을 때의 희열은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결과는 앞서 언급했듯 좋지 않았지만, 마음가짐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충분한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을 때보다 스스로가 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뿌듯함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시간이 없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떳떳하게 시간이 없었다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 30분의 시간이라도, 때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라도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 그 성과가 당장은 미미하게 느껴질지라도, 쌓이다 보면, 돌이켜보면 결코 작지 않다. 그렇게 시간을 활용하다 보면 흘려보내는 짧은 시간들마저 아깝게 느껴질 때가 분명 찾아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기와 도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