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 원고지로 100매 정도 분량이 되는 단편소설을 완성시킨 적이 있다. 분수에 안 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아마추어에게는 짧지만은 않은 분량의 글을 완성시켰다는 경험은 지금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중 가장 크게 도움이 됐던 부분은 바로 마음가짐의 변화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일단 손을 대 진전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 비단 글쓰기뿐 아니라 뭔가를 시작하고 마무리지어 완성시켜야 할 때마다 나는 이를 떠올린다.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들 저마다의 할 일이 있고, 시간이 부족한 저마다의 사유가 있다. 그런 와중에 일상에 틈을 내어 뭔가를 새로이 시도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고로 바쁜 사람일수록 자투리시간의 활용이 중요하다. 실로 성취의 여부는 모두 여기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그랬다. 퇴근하여 씻고, 저녁을 먹고, 고양이들 밥을 좀 챙겨주고, 간단하게 정리도 좀 하고 나면 벌써 9시였다. 회사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TV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탐험하는 등 취미 내지는 여가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나면 금세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이런 와중에 소설을 완성시키겠다고? 처음에는 꿈같은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공모전의 마감기한이 다가올 때쯤, 이러다가는 언제나처럼 시작도 못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진득하게 늪처럼 자리 잡고 있는 루틴을 어떻게든 깰 필요가 있었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느낌으로 글쓰기를 일상 속에 찔러 넣어야 했다.
회사에 출근하여 점심을 좀 빨리 먹고 나면 30분쯤 시간이 남을 때가 있었다. 업무에 치어 바쁜 날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드물게 평소보다 여유 있는 날이면 마찬가지로 30분쯤 시간이 남기도 했다. 집에 와서 여가시간을 30분쯤 아끼기도 했다. 큰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시간들에 주목했다.
다소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일단 시작하자 의식이 자꾸 글쓰기로 향했다. 굳이 거창하게 마음먹지 않더라도, 짧게나마 시간이 생기면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어 글쓰기 어플을 켰다. 생각이 정리되면 몇 글자라도 글을 쓰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이 지나자 뭐라도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가 눈에 띄자 도중에 손을 놓기가 더 어려웠다. 욕심이 났다. 끝까지 완주하지 않으면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았다. 계속 걸었다. 끝이 보이자 더욱 힘이 났다.
결국 소설을 완성시키고 난 다음 최종적으로 글을 제출했을 때의 희열은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결과는 앞서 언급했듯 좋지 않았지만, 마음가짐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충분한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을 때보다 스스로가 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뿌듯함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시간이 없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떳떳하게 시간이 없었다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 30분의 시간이라도, 때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라도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 그 성과가 당장은 미미하게 느껴질지라도, 쌓이다 보면, 돌이켜보면 결코 작지 않다. 그렇게 시간을 활용하다 보면 흘려보내는 짧은 시간들마저 아깝게 느껴질 때가 분명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