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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07. 2023

복수하고 싶을 때

혹시 누군가에게 욕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빠 욕을 되돌려준 기억은 없는가? 그때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한 상대의 기분을 똑같이 나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희열을 느꼈는가? 아니면 자신이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자책감을 느끼고 후회했는가?


복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과도 같다. 우리의 유전자는 자신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려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 존재에게 공격적인 마음과 태도를 갖게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실행하도록 명령한다. 그렇게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복수의 역사가 있어 왔고, 현대화된 지금도 복수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아마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이 행위를 완전히 근절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복수심은 사실상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성인군자 같은 이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타인에 의해 상실한다면 엄청난 복수심을 불태우게 될지 모른다. 또한 이때 실제로 얼마나 복수심을 가지게 될지는 본인조차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므로 미리 복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복수의 목적은 앙갚음을 통해 복수심, 증오, 분노를 해소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있다. 그런데 평안을 얻는 데에서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가 생각보다 아주 어렵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경우 또한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수를 행동으로 옮길 정도라면 복수심이 아주 큰 상황일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복수심이 크면 클수록 그 마음을 해소하기는 더 어렵다.


그렇다면 복수심을 가져서는 안 될까?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복수심은 감정이기에 가지고 싶지 않다고 맘대로 가지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복수심을 해소하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명백하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복수심을 갖지 않는 방법, 무작정 억누르는 방법보다는, 복수를 현명하게 잘할 수 있는 방법, 또는 복수심을 잘 해소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때 꼭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그 행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먼저 잘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즉, 복수는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 한다면 결국 부질없는 행위라는 의미다.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이 본질을 잊었던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려 있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복수심을 통제하는 게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좋은 복수란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수준에서 앙갚음을 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법의 힘을 빌려 복수하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좋을 거다. 그리고 그럴 수 없을 때 사적으로 복수를 하는 것에 대해 말릴 수 있는 권리는 없겠지만, 그것이 정말로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꼭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복수가 낳는 수없이 많은 폐단을 차치하고서라도, 정작 자신에게조차 이익이 없다면 그것은 나쁜 복수인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수심이 들 때는 바로 표출하지 말고 생각이라는 필터링을 평소보다 더 많이 거쳐야 한다. 복수심이 얼마나 통제하기 어려운 것인지, 복수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쉽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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