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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28. 2023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

과거의 나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가장 미안한 때는 아마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때인 것 같다.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아이 몇몇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때가 있었다. 어떤 아이는 내 물건을 빌려갔다가 돌려주지 않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공연히 나를 때리기도 했다. 나는 바보처럼 그런 행위들을 그저 참고 견디기만 했다. 더 글로리의 송혜교처럼 잔인하게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하필 어려운 가정사도 겹쳐 참 힘든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가장 가파른 언덕이었다.


나는 육체적으로 나약한, 정신적으로는 특이한 아이였다. 흔히 생각하는 중2병에 걸렸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그 점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 같다. 심기를 건드렸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실이 그들의 행동에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결코 가만있지 않을 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방법을 찾아낼 거다. 스스로의 소중함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끔찍한 경험이 내게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과거의 경험이 예민한 경보로 작동해,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를 느끼면 가만히 있지 않게 해 준다. 시간이 흘러 현재가 과거가 되었을 때, 과거의 나에게 또다시 미안해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가끔, 과거의 나를 투영하게 만드는 이를 본다. 스스로에 대한 괴롭힘을 참고 견디는 이를 본다. 바보 같았던 나처럼 스스로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그래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이를 본다.


자발적으로 감내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한 괴로움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다. 스스로가 괴롭히든, 타인이 괴롭히든, 더 이상 괴로움을 참고 견딜 필요는 없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더 이상 과거의 나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의 당신이 과거의 당신에게 미안해하지 않도록, 현재의 당신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미안해할 날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가 소중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바보 같은 나도 해냈으니까, 당신도 분명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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