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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01. 2024

출간 계약서를 썼다

정확한 시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독서를 제법 많이 해왔기에 사회생활에 지칠 때면 이 꿈을 자주 떠올리며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럼에도 꿈으로 향하는 길이 지나치게 막연하기에, 한참 동안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19의 유행과 함께 오프라인 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겼다. 평소 외부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길 좋아했던 나에게는 제법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대응방안을 모색하다가 난생처음으로 온라인 카페를 찾아 커뮤니티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시콜콜한 일상이야기와 댓글이나 적으며 활동을 하다가 누군가 쓴 글을 접한 날이 떠오른다. 읽어보니 너무나 잘 쓴 글이어서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나도 언젠가 이런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필력을 키우기로 마음먹고 이전보다 좀 더 글에 힘을 주었다. 글을 쓸 때, 퇴고할 때 모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를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쯤이다.


비록 책을 좀 읽어보았다고는 하나 화학공학 전공자이자 글을 써 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나에게 글쓰기는 쉬운 행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정말로 즐거웠다. 때로는 스스로도 열정의 원천이 무엇인지 의아할 정도로 열심히 글을 썼다. 길을 걷다가도 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발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열어 글을 쓸 정도였다.


작가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던 나는 타인의 반응과 평가가 궁금해져 부끄러움도 모른 채 엉망진창인 글을 사람들에게 내보였다. 그래도 노력이 배신하지는 않아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내 글을 좋게 봐주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더 열심히, 더 많은 글을 썼다. 조금씩이지만 필력이 늘어나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의 존재를 알게 되어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에 블로그에도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글 쓰는 즐거움을 느꼈다. 갈수록 글쓰기가 더 좋아졌다. 더 많이 쓰고 싶어졌고,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냈다.


그러다가 글쓰기의 동력이 떨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쯤 공모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쨌든 전업작가가 꿈이라면 어떤 공모전이든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제도 모르고 야심차게 여러 작품을 제출했지만 모두 낙선이었다. 나는 과거부터 써온 내 글들을 다시 살폈다. 당시에는 제법 잘 썼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엉망인 글이 많았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부족한 점을 스스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을 키웠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웠다. 마음을 다 잡았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계속 글을 썼다. 공모전에 제출할 수 있는 형식을 어느 정도 갖춘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쓰며 더욱 필력을 길렀다. 모든 글은 장르에 상관없이 자유도가 중요하지만, 적어도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절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작년 말 모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단편소설 공모전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낙선 소식을 너무 많이 접해 별 기대 않고 이전에 썼던 단편소설을 퇴고하여 제출했다. 놀랍게도 바로 얼마 전 당선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믿기지 않아 메일을 몇 번이고 읽었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시상식에도 참석하고, 부끄럽지만 작가님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생애 첫 출간계약서를 썼다. 단편소설집의 여러 작품 중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내 이름이 실린 책이 출간될 것이다. 그 놀라운 일이 조만간 현실이 된다.


처음으로 출간계약서를 쓰게 되면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실제로도 좋긴 하지만, 적어도 전보다는 글에 대해 겸손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갖게 되어서 그런지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고 되뇌며 들뜨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 출간계약서를 썼다고 해서 그다지 바뀌는 건 없다. 출판사에서도 말했듯 많은 부수가 팔릴 만한 책은 결코 아니다. 직업이 바뀐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 남는 시간마다 틈틈이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출간계약서를 썼다는 의미를 굳이 폄하할 필요도 없다. 누가 뭐래도 의미 있는 성과다. 자만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이를 더 글쓰기에 매진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는다면 더할 나위 없다. 딱 그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공모전에 도전하여 더 많은 출간계약서를 쓰고 싶다.


틈만 나면 한다는 표현이 있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틈만 나면 글을 쓴다. 그래서 이제 글쓰기는 일상이다. 물론 전업작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때로 온 신경이 글로 향해 있다는 느낌에 스스로 뿌듯해질 때가 있다.


앞서 말했듯 내 꿈은 작가다. 그런데 꿈을 말하기 전에 응당 가졌어야 할 의문이 있다. 도대체 작가란 뭘까? 출간계약서를 쓰면 작가인 걸까?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진정한 작가란 지속적인 창조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고로 내 꿈은 죽는 날까지 지속적인 창조행위를 해야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는 이 꿈을 위해 계속 노력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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