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감각(Si)이 열등기능인 엔팁은 지나간 과거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이 경향은 종종 강점이 되는데,
이를 테면 몇 시간 전 실수했던 기억에 갇혀 후회하기보다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내 행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과거(열등기능 : Si)보다는 앞으로 찾아올 미래(주기능 : 외향직관 Ne)가 더욱 중요하다 여기고
합리적인 사고(부기능 : 내향사고 Ti)를 통해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것이다.
그 어떤 선택으로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기에,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이들의 사고방식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할지라도
과거를 그저 무시해 버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꿀 수 없다 할지라도 과거는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매사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강한 이들은
지나간 실수 따위는 괜찮다며 그저 다음에 잘하면 될 거라
낙관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는 비록 맞는 말이지만,
여기에서 그치고 결국 실수라는 과거를 잊는다면
십중팔구 비슷한 실수는 반복되고,
비슷한 현실은 다시 찾아오고,
또 비슷한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얽매이지 않는다 해도 그 과거는 분명 '존재하는 과거'이며,
그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잠시 미뤄두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대하는 좋은 방법은
그 과거를 잊는 게 아니라 그 과거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 낙관적이기만 한 엔팁의 성취 여부는
잊어야 할 과거와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의 현명한 구분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