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문득 앞으로 영국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궁금해져서 카운트다운을 해봤더니 이백 몇일이 나오더라.
약 6개월하고도 며칠이겠거니 생각하다가 몇일로 딱 나오니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게 갑자기 확 와닿았다.
머문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 짧아진거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여기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시간들, Z를 두고 언젠가 떠난다는게 기분이 이상하다.
장기여행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자주 비자 만료일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 떠날 준비를 나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날들이었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마지막 날을 알 수 있다면 남은 시간을 더 가치있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 앞에 비교적 덜 중요하다고 느끼는 노동과 돈을 줄이고, 시간을 사는거다.
그리고 그 안에는 외부와 내부 생활에서의 경험들이 쌓여가겠지.
오늘 오전에 마주한 고객 한 분이 계속 이렇게 근무하는 거냐고 물으며 꼭 잘 쉬어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그냥 그 마음이 잘 와닿았다.
안 그래도 근무 일수 줄입니다 라고 속으로 대답했으니 못 듣고, 그냥 웃는 내 얼굴만 봤을테지만 말이다.
나는 쉬이 포기를 잘 하는 편이라 이만하면 됐다고 느낀다.
지금 영국 런던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보너스 같은 느낌이 크다. 잘 해도 되고 못해도 괜찮은, 언제든 포기해도 괜찮은 그런 시간.
이미 충분히 잘 했으니 이번 보너스 스테이지에서는 그저 잘 즐기고 충분히 쉬고, 잘 마무리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언제든 중도하차해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덤이다.
세번째 워홀의 끝자락을 달리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세상 속 수많은 사람들,그 얼굴들, 마주했던 웃음까지 모두 마음 가득 남을건 남고, 흐려질 것들은 흐려지겠지
아~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도움도 받았고, 마음도 나눴으며 나름 매 순간에 진심이려고 했던 것 같다.
우리의 만남은 찰나와 같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물리적 거리를 앞에 두니 이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이유였다.
그러니 언제든 제자리로 돌아갈 때 정말 정말 재밌게 잘 놀다왔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주쳤던 인연들의 끈이 세월에 덧입혀 얇아지고 어느 순간엔 끊어지기도 할테지만 그래도 다 괜찮을 것 같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날에 만나 함께 할 수 있었으니 결국엔 다 괜찮은 일이다.
다 각자의 길을 가다보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즐거울 수 있고,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일이니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면 될 일이라 생각한다.
고마웠고 덕분에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 라고 생각할 것 같은 워홀의 마지막날을 벌써부터 상상해본다.
고생 많이 했지만 지난 선택들에는 후회가 전혀 없다.
잘 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