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 그 후
36개국을 여행하고, 3개국에서 워홀을 끝내고 보니 한국나이로 30대 중반이 되었다. 내가 첫 워홀 국가였던 호주에 있었을 때 월세를 받던 남자는 본인의 누나도 이곳 저곳 해외 생활을 하다 지금은 한국에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다는 둥의 얘기를 나에게 했었다.
그 당시 내 나이는 20대 중후반이었는데, 그 얘기가 꼭 내 미래의 30대에 다가올 저주처럼 길고 얉은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누나의 나이라는 나이대에 내가 도착해보니 당황스러운 것도 없지 않아있다.
나는 근 7-8년을 정말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열심히 일을 하고 그 다음해에는 열심히 여행을 다니는 소히 갭이어를 워홀을 1개국 끝낼 때마다 지내곤 했다.
마지막 워홀 국가였던 영국 워홀을 이번년도 2월에 끝냈으니 이제 온전히 쉰지는 약 3개월 정도 더 지나고 있다. 퇴사는 1월에 했으니깐 벌써 4개월을 일 안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거다.
이제는 워홀을 갈 나이는 지났고, 수 많은 경험들만 남았다. 나는 이 경험들이 또 앞으로의 길을 자연스럽게 열어줄거라 생각했었는데 워홀 다음 워홀 같은 나름의 쉬운 선택은 이제는 지난 일로 보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에 있는건 아니고, 영국 남서쪽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중국인 남자친구와 이제 막 동거를 시작한지 일주일 조금 넘었다. 이 친구는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연고지 없는 곳에 와있다보니 내 시간이 엄청나게 늘은거다.
블로그도 매일 쓰게 되었고, 산책도 거의 매일 하고 - 자연을 즐기는 일이 늘었다.
내가 발리에 있을 때만해도 내 인생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이 들어 정말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그 상황에 놓이니 여기서 보내는 이 알다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는다.
이미 엄마는 두어번 내게 물어봤다.
그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인지, 너희 둘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말이다.
내가 문득 점심이 지난 오후쯤, 바깥 창문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나는 뭐가 그리 두려운 것일까 ?. 나이가 찼고, 분명히 혼자 잘 지냈었던 어느 날들이 있었던거 같은데 이제는 혼자 보다는 둘이 지내는게 좋아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결혼 비자를 진행하려고 했었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됐고, 나의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의아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만약에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이고,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어쩌면 우리 둘이 인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혼자 들기도 하고. 어찌어찌 이것도 인연이려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도 그냥 남들처럼 잘 살고 싶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나는 그럼에도 여행을 하며 살 수 있으니 괜찮다며 지내왔던거 같다.
우리가 있는 이 곳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여행이 필요했을까.
나는 모든 것들에서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열심히 도망친 곳에 출구는 없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