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인종차별에 대해 말을 하는 여행가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무딘 건지 아니면 인종차별이라는 정의를 남들과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인종차별은 직- 간접적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인데, 그런 적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그렇게 7-8년의 해외생활을 했음에도 크게 감정의 변화가 없던 나는 이 영국시골로 온 지 얼마 안 된 뒤부터 인종차별을 느꼈다.
우리가 런던에서 지낸 2년 동안에도 괜찮았던 일이 시골에서는 왜 그런 걸까.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보수적인 부분이 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 번은 중국인 남편과 버스를 타고 가는 중 뒤에서 들려오는 말들에 기분이 상했다.
"니하오 ~ 니하오 ~ 꺼져버려~ 당장 내려"
마침 다음 정거장에 내리는 순서였던지라 우리는 그렇게 그 말들을 뒤로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한 번이라도 뒤돌아 째려보기라도 할 것을 분쟁을 싫어하는 남편은 그저 한 귀로 듣고 걸음을 옮겨 그들과 멀어질 뿐이었다.
영국인들은 니하오를 다 알고 있는 것일까. 걷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던지고 가는 니하오~
기분이 나빴다. 그렇다면 이 말을 듣는 중국인 당사자는 어떤가 하고 물어보니 그 대답이 더 흥미로웠다.
"니하오라고 사람들이 말하고 지나가는 거 어때?"
"좋은데?"
"에..? 왜..? 저거 인종차별이야."
"왜냐하면 중국 인사말을 알고 인사해 주는 거잖아"
내 기준에서는 니하오는 인종차별의 대명사 같은 것이 아닌가 싶은데 중국인 스스로에게는 반가움의 표시인가보다.
이런 날도 있었다.
버스 뒤와 옆쪽에 타고 있던 젊은 사람들이 니하오로 냐옹 거리면서 조롱하던 일.
더 기분을 상하게 하던건 본인들이 하는 흉내에 웃겨서 자지러지던 모습이다.
최근의 일은 어떤가. 오랜만에 집에서 나와 옆동네에 놀러 갔다가 화장실에 간 남편을 혼자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저 멀리서 동태눈의 남자가 어슬렁 나를 향해 걸어오길래 쏘리 ~ 하고 자리를 피했더니 좀비처럼 쫓아오던 일.
"쏘리를 홍콩이나 중국어로 뭐라고 해?"
나는 두려움에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갔다.
"뻐킹 루드 XXX "
나의 행동이 무례하다며 욕과 함께 쫓아오던 사람.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몸을 피하고 남편에게 연락을 취해보려고 했으나 도통 핸드폰의 신호가 잘 안 잡히는 거다.
잠시 몸을 피하고 있다가 나오니 세상은 나 혼자만 놀란 듯 다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맑은 하늘 속 평범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구촌 세상 ~ 마음은 통한다네.라는 생각은 순진한 젊은 날의 희망이었던가. 나에게도 인종차별을 제대로 겪는 날이 올 줄 몰랐지만, 이제는 여행도 워킹홀리데이도 아닌 영국시골 생활의 출발선에 선 사람에게 혹독한 매운맛을 보여주려는 건가보다.
마음 단단히 먹어. 영국시골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삶이 녹록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되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