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그 현란한 언변과 착각의 타파를 위하여
by 붓 하나의 마음 I 전용석 Oct 21. 2023
어떤 선사들이나 소위 깨달았다는 (잘못된) 자각을 하는 이들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 라는 식의 말을 합니다. 이 진술에 대해 헛갈리시나요? 그러면 명상 최고 수준에 이른 분의 말씀을 참고해서 답을 찾아보면 됩니다. ^^
제가 알기에는 부처님의 방대한 법문 중에 생사가 하나라는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삼매의 체험 중에(특히 초선) 지극한 희열의 상태에서 일부 그런 듯이 느껴지는 체험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상적인 의식과 비할 수 없이 너무나 강렬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소위 깨달은 듯이 (체험했다고) 말하고 자각(착각)하는 자이든 아라한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른 이라도 해도 그 앎이 붓다의 지극히 일부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으로 깨달은 이가 아라한이고 붓다 역시 아라한이지만 붓다는 굳이 표현하자면 아라한에 더하여 지극히 무한에 가까운 앎과 지혜가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요. 깨달음에 필요한 자신의 앎의 지극히 일부만을 알려주는 것이고 굳이 알 필요 없는 방대한 것들이 있다고요.
아무튼 탐진치를 모두 소멸한 아라한이 되어 생과 사의 무한반복의 여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이 과정은 끝없이 반복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인간으로만 반복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축생, 아귀, 지옥 등 온갖 악처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나마의 희망은 선행이나 바른 수행을 통해 갈 수 있는 욕계와 색계 무색계 천상도 있다는 것일 겁니다. 이를 육도 윤회 혹은 삼계 윤회라 하지요.
이런 방대한 윤회 무한한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해탈)이 탐진치의 완전한 제거에 달려있고 이 실천적 방법이 다름 아닌 팔정도이며 이해의 바탕이 되는 바른 견해가 사성제입니다.
오죽하면 부처님의 유언이 방일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말씀이었을까요!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체험한 바에 따르면 이러저러하니 깨달음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면 즉각 깨닫게 된다...는 등의 감언이설을 늘어놓습니다.
강조하건대 바른 해탈(분명히 쓰셨어요. 바른 해탈이라는 표현을. 즉 바르지 않은 해탈이나 열반, 깨달음의 착각인 상태가 있다는 겁니다) 은 어떤 신비 체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8가지 단계의 삼매를 마스터하는 과정에 참고할만한 지표는 있지만) 반드시 탐진치의 완전한 제거가 가장 간결한 답이 되는 것이죠.
세상에는 이런 바탕을 모르거나 혹은 알아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과장과 거짓으로 언행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선은 위에 언급한 간단한 내용부터 간파하고 (필요하다면 부처님의 실제 행적을 담은 니까야 초기경을 스스로 읽어서) 제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스스로 마음에 새겨서 (그래야 깊은 믿음과 신뢰가 깊이 자리 잡을 것이므로) 비록 먼 길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다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바른 한걸음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