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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제 전용석 May 04. 2024

[장자3]소요유3-요임금의 정신은 왜 흐리멍텅 해졌나?

명상의 핵심을 먼저 알아야...


[장자3] 소요유3 - 스승을 만난 요 임금의 정신은 왜 흐리멍텅해졌을까? / 명상의 핵심을 먼저 알아야!



송나라 모자 장수와 요 임금


11. 송(宋)나라 사람이 예식 때 쓰는 모자를 잔뜩 가지고 월(越) 나라에 팔러 갔습니다. 그러나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는 문신을 해서 모자가 필요 없었습니다.

요 임금은 세상을 잘 다스려 나라가 태평해지자, 멀리 고야산에 사는 네 스승을 뵈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분(汾)강 북쪽 기슭에 다다랐을 때, 망연자실(茫然自失)해 자기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큰 박과 손 트는 데 쓰는 약


12.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했습니다. “위(魏)나라 임금이 준 큰 박 씨를 심었더니 거기서 다섯 섬들이 박이 열렸네. 거기다 물을 채웠더니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었지.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깊이가 없이 납작해서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는 데 크기만 하고 달리 쓸모도 없어 깨뜨려 버렸네.”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군.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약을 손에 바르고 무명을 빨아서 바래는 일을 대대로 하였다네. 지나가던 길손이 그 말을 듣고, 금 백 냥을 줄 터이니 약 만드는 비방을 팔라고 했지. 그 사람은 가족을 다 모아 놓고 의논하기를 ‘우리가 대대로 무명을 빨아 바래 왔지만 기껏 금 몇 냥밖에 만져 보지 못했는데, 이제 이 약의 비방을 금 백 냥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팝시다’ 하였다네.



13. 그 길손은 오(吳) 왕에게 가서 [그 약의 효험을] 설명했네. 마침 월(越) 왕이 싸움을 걸어오자, 오 왕은 그 길손으로 수군(水軍) 대장을 삼았다네. [그 약으로 수군들의 손이 트지 않도록 할 수 있었기에] 겨울에 수전(水戰)을 벌여 월을 대패시켰다지. 왕은 그 사람에게 땅을 떼어 주고 영주로 삼았다네.


손 트는 것을 막는 약은 한 가지인데, 한 쪽은 그것으로 영주가 되고, 다른 쪽은 무명 빠는 일밖에 못했으니, 똑같은 것을 가지고 쓰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게 아닌가? 자네는 어찌하여 다섯 섬들이 박으로 큰 술통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 놓고 즐길 생각을 못 하고, 깊이가 너무 얕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고만 걱정했단 말인가? 자네는 아직도 작은 [일만 생각하는] ‘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네 그려.”



쓸모 없는 나무?


14.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하네. 그 큰 줄기는 뒤틀리고 옹이가 가득해서 먹줄을 칠 수 없고, 작은 가지들은 꼬불꼬불해서 자를 댈 수 없을 정도지. 길가에서 있지만 대목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네. 지금 자네의 말은 이처럼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걸세.”


장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너구리나 살쾡이를 본 적이 없는가? 몸을 낮추고 엎드려 먹이를 노리다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이 뛰고 낮게 뛰다 결국 그물이나 덫에 걸려 죽고 마네. 이제 들소를 보게. 그 크기가 하늘에 뜬구름처럼 크지만 쥐 한 마리도 못 잡네. 이제 자네는 그 큰 나무가 쓸모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고을(無何有之鄕)’ 넓은 들판에 심어 놓고 그 주위를 ‘하는 일 없이(無爲)’ 배회하기도 하고, 그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게. 도끼에 찍힐 일도, 달리 해치는 자도 없을 걸세. 쓸모없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지 않은가?”


- 오강남 교수 번역의 장자 본문 내용에서 발췌





이 부분은 장자를 시작하는 1부에 해당하는 [소요유] 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장에서는 대부분 어떤 사물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떤 사물도 그 쓸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관점을 바꾸어 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경우에 따라 세상살이에 도움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요 임금에 관한 이야기다.


‘ 요 임금은 세상을 잘 다스려 나라가 태평해지자, 멀리 고야산에 사는 네 스승을 뵈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분(汾)강 북쪽 기슭에 다다랐을 때, 망연자실(茫然自失)해 자기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요 임금은 멀리까지 찾아가서 네 스승을 만났다.

그렇게 멀리까지 갔으니 스승들에게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배우기는 했을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망연자실해서 자기 나라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한다. 여기서 역자는 망연자실이라고 표현했는데 원문에는 망연자실이 아니라 ‘窅然(요연)‘ 이라 되어있고 그 의미는 ‘정신이 멍하다’ 이다.


자기 나라가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크고 중요한 일임이 틀림 없다. 일국의 국왕이나 대통령이 자기 나라가 있다는 것을 정신이 멍해서 잊었다고 상상해보자. 그 나라는 어떻게 될까? 현재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멀리 왕래해서 스승을 만나서 돌아오는 길에 정신이 멍해져서 그렇게 중차대한 일을 잊었다? 아무리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라고 해도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중국의 고대사를 보면 유난히도 전쟁이 잦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는 왕이 조금만 정치를 잘 못해도 특히나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이 오가는 큰 일이 생길 수 있다. 어찌 보면 지금보다도 정치가 더 중요한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혹시 인도의 성인으로 여겨지는 인물들이 깊은 명상 상태 - 삼매 - 에 들어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상태는 적어도 겉보기에 선불교 선사들처럼 꽂꽂하게 앉아있는 자세가 아니다. 뭔가 풀어져 있고 느슨해보이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멍한’ 상태처럼 보인다. 그들은 정말로 흐리멍텅한 상태일까? 아니다. 삼매는 긴장된 상태가 아니다. 삼매는 내려놓고 비워진 상태에 가깝다. 겉으로 보기에는 극도로 이완된 상태이지만 내적으로는 명징하게 깨어있는 상태다.


다음과 같이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 임금의 정신이 멍해졌다는 것은 겉보기에만 그런 것이다. 요 임금은 삼매에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삼매에 들면 세상사 현실의 일들에 대해 잊어버리게 된다. 물론 반대로 정신을 일으켜서 기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굳이? 뭣하러 어지럽고 귀찮은(?) 세상사에 대해 떠올리겠는가.


삼매에는 단 하나의 단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붓다께서 알려주신 여덟 단계의 삼매들이 존재하는데 1-4단계 까지는 1단계를 초선이라 부르고, 그 다음부터는 2선, 3선, 4선이라 한다. 그리고 나머지 단계들에 대해서는 각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름들이 있다 -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여기서는 초선에 대해서만 잠깐 언급하자면 붓다께서는 이 초선을 ‘죽을만큼 좋은 병’ 이라 하셨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 환희로움을 일상적인 경험 중 다른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야말로 ‘죽을만큼 좋은’ 상태이다. 앞에서 요 임금이 최소한 초선 삼매의 단계에 이르러서 자유자재로 마스터했다고 가정해보자 - 즉 초선의 경지에 들고 남에 거리낌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 ‘따위’ 가 무슨 즐거움을 주겠는가? 이런 명상적 환희와 행복을 불가에서는 ‘출세간의 즐거움’ 이라 한다.


그런데 붓다는 왜 이런 좋은 삼매의 상태를 ‘병’ 이라고 하셨을까?

초선 삼매는 너무나 엄청난 황홀경이다. 물론 나머지 삼매의 단계들은 거친 황홀경이 잦아들며 좀 더 깊은 고요와 평화가 있지만 ‘좋은 상태’ 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좋은 느낌일수록 더더욱 집착하기 쉬워짐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심리다. 그래서 이 좋은 초선 삼매도 버려야 2선에 들 수 있다. 초선 삼매에 집착해서 그것에 안주하려 하기에 발전이 더뎌지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좋은 느낌을 쉽게 버릴 수 있을까? 다시 강조하지만 일상적인 우리 마음이 경험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수 백 배는 더 강렬하다면?


명상에 관심이 있고 나름의 수행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나 자신을 포함하여) 대체로 뭔가 ‘좋은 방편’ 을 찾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미리 말해두자면 그런 어리석음과 집착으로 인해서 이 방법이 맞을까 기웃, 저 방법이 맞을까 기웃, 그렇게 여기 저기 기웃기웃 하며 찾아다닌다. 그야말로 명상의 쇼핑족이다. 그러면서 자신과는 맞지 않는 방법이라거나 뭔가 잘못된 방법이라고 여기며 그런 패턴을 계속 반복한다. 어찌 보면 신포도를 외면하기는 하는데 끝없이 그런 행태를 반복하는 여우같은 심리다.


결국 문제가 자기자신에게 있음을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핵심은 자신의 ‘탐진치’를 어떻게 제거하느냐에 달려있다. 이것을 정말로 이해하면 방편은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붓다의 가르침에서 핵심적인 교리도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계정혜’ 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계목(계율), 선정(삼매), 지혜(반야, 통찰지) 이 세 항목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붙어다니는 것이다. 게다가 순차적인 관계 또한 가지고 있다.


계목을 잘 지키면 지킬수록 마음은 고요해지고 안정된다.

반대로 지키지 못하면 - 거짓말(화이트 거짓말도 거짓말이다), 절도(남이 주지 않는 것을 알아서? 가지는 것이 절도이다), 음주(와인 한 잔도 음주이다), 폭언(흔한 욕설을 습관처럼 입에 담는 것도 폭언이다), 폭행(언어적인 폭언도 폭력이고 정신적인 폭행도 존재한다), 살생(작은 벌레를 잡아도 살생이다) 등 -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음은 울렁이게 되어 있다.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그래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저절로 삼매에 든다, 계목만 아주 잘 지켜도 (하지만 쉽지 않다) 삼매에 저절로 들 수 있다고 붓다께서 확언하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계목 따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무시하면서 좋은 방편만을 찾아다닌다. 물론 어떤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두뇌는 그것만으로도 특정한 트랜스 상태 비슷한 상태에 빠지거나 최면이나 몽롱한 상태, 특별한 영상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친구? 중에 본드를 흡입하는 녀석에게서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야 말로 초능력자가 아닌가! 특정한 호흡으로 산소의 흡입 등을 조절하면 뇌는 명상적인? (이라고 착각하는)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이런 방법들에 대해서 아주 신성한 것으로 ‘포장’ 해서 그럴 듯하게 설명할 수도 있다.


그래서 팔정도의 각각의 항목들에는 바른-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사띠, 바른 삼매이다. 두 항목이 더 붙어서 십정도(十正道)라 언급될 때도 있는데 바른 지혜, 바른 해탈이 더해진다. 맨 마지막이 바른 해탈(깨달음)이며 이는 곧 깨달음으로 보일지라도 ‘바르지 않은 깨달음’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앞에서 ‘탐진치 버리는 마음’이 중요하고 방법이나 방편은 중요하지 않은 듯이 인식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무엇을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효과적으로 버리고 비울 방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럴 때 그 효과는 배가 되고 시간은 훨씬 더 단축될 수 있을 것이다.


명상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여!

무엇이 핵심인지를 알고 명상을 하자.

지킬 것을 잘 지키며 버릴 것을 잘 버려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사 복잡한 일들 다 잊게 되기를 바란다.


- 明濟 전용석



한흐름 마음비움센터 I 한흐름 기명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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