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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더스 Oct 01. 2022

밴쿠버 여행의 꽃말은 시기상조

첫 단추 끼우기가 가장 힘들어

명색이 워홀러인데 도착 5일차부터 노동으로 가득 찬 삶을 산 나는 중국 유학생 동료 Y를 꼬셔 밴쿠버 여행에 나섰다. 외국에서 온 청춘 둘이 여행을 간다니 단번에 휴가를 허락해주신 맘씨 좋은 사장님 덕에 2박 3일을 거머쥔 우리. 짧은 기간인지라 투어는 포기하고 시내에서 한가롭게 쉴 기대로 마음이 부푼 나는 페리 터미널로 향하는 도로 한가운데 길을 잃고 만다.


이놈의 구글맵, 꼭 중요할 때 난리다. 그냥 마지막 정거장으로 향하면 될 걸 굳이 중간에 내려 걸어가는 최단거리를 알려줬다. 덕분에 두 다리가 교차하는 드넓은 도로에 홀로 내린 나는 어디를 보아도 페리 터미널스러운 건물들을 보고 좌절, 워홀러의 용기를 되새기며 팔을 앞으로 뻗었다. 나 길 좀 알려달라고.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따뜻한 운전자들의 엄지 척. 그렇다, 그들은 내가 히치하이커인 줄 알았다더라...


간 떨리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나 여행 온 거 맞지?

첫날 만난 아버지 직장동료의 형님 분 덕분에 두 번째 날 일정인 스탠리 파크까지 돌아버린 우리는 그분이 사준 밥으로 가득 찬 배를 두드리며 계획을 조율했다. UBC(밴쿠버 대학교)란 단어에 화색이 돌던 Y를 배려한 나의 제안에 따라 남의 나라 대학교를 들르게 된 우리, 넓긴 무지하게 넓고 그만큼 황량한 캠퍼스를 마주하게 된다. 서밴쿠버보다 크다더니 크긴 정말 커서 벤치에 넋을 놓고 앉아있는데 이 친구가 시간을 정하고 그때까지 따로 다니자는 말을 먼저 꺼낸다. 솔직히는 할까 말까 고민하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Y에 문득 떠오른 생각, 아 얘도 어른이었지. 뭘 그렇게 걱정하고 원하지도 않는 배려를 했는지. 캐나다에서 한국식 오지랖을 부린 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홀로 남아 경치를 보고 도서관에다 인문대스러운 곳도 들어갔다가 서점 구경에 작은 분수까지 본 후, 나는 냅다 드러누웠다. 유학생 친구들을 보고 키운 로망처럼 남 시선 신경 안 쓰고 드러누운 그날은 아직 쌀쌀한 5월, 환상과 달리 이쪽을 쳐다보는 따가운 눈빛에 버티지 못하고 일어난다. 이후로도 쉴 곳을 못 찾고 떠돌다 결국 남의 운동 연습까지 관전하며 꾸역꾸역 시간을 때우는 동안 졸린 눈을 뻐끔거리던 내 안에서 열 번도 넘는 그동안의 여행이 교차되었다. 자기 과신에 가득 차 명령하듯이 계획을 짜고 강박적으로 이행하던 지난날이 흘러갔고 지치는 게 지겨워 목적 없이 향했던 발걸음도 떠올랐다. 이번만 해도 최대한 많은 배려를 해준답시고 내 내면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으니, 세상에 완벽한 여정은 없다지만 이제는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고집해야 할지 감이 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 사색의 끝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고 우리는 다음 약속 장소로 향했다. 친구의 선배님께, 그날 저녁의 훠궈 감사합니다.


어두컴컴 가스 타운

UBC에서 허비한 시간이 아까워서일까. 마지막 날, 아침만큼은 먹겠다며 팀 홀튼에서 줄까지 서 시간을 낭비하고 느지막이 가스 타운으로 향했다. Y의 고등학교 선배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버스 경로를 홀라당 까먹고 도착한 그곳은 동 밴쿠버의 헤이스팅스 거리. 처음 오는 사람은 충격을 받는다던 밴쿠버의 할렘가 되시겠다. 누가 봐도 약에 절은 노숙자들이 상하좌우 네 블록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거리를 친구와 나는 덜덜 떨면서 나아갔다. 콩에 불 볶듯이 관광을 하며 어쩌다 보니 학구적인 곳만 골라 갔던 우리라 맛집과 상가가 모여 있는 가스 타운에 그토록 기대를 걸었건만 전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실망스러움과 두려움만 남았다. 게다가 일분일초가 중요한 순간에 비싼 초밥을 남기고 달려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페리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우리는 거의 말을 나누지도 못하고 쓰러진다.


돌아오는 길은 반성과 함께

편도 시간만 5시간에 달하는 거리. 차라리 배에서 어물쩡 보낸 시간이 나았을 정도로 이층 시외 버스는 서서 가는 사람까지 꽉꽉 채운 만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앉아 상념에 잠기는데 불쑥 왜 여행을 떠난 것인지 짜증이 밀려왔다. 아무리 완벽할 순 없어도 지칠 대로 지쳐 남의 대학 벤치에서 낮잠을 청한 게 무슨 추억이 되겠나 싶어서. 별생각 없이 열어본 계좌가 텅텅 빈 걸 확인한 후에는 차라리 부정적인 생각이 모두 가라앉고 다른 워홀러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들었다. 워킹만으로 몸에 무리가 오는 지경인데 다들 홀리데이까지 어떻게 챙기는지. 이래서 다들 호주로 가라고 하는 건가 싶은 찰나, 설상가상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고 이내 호우로 변하는 날씨 속을 버스는 미끄러져 달려갔다. 덕분에 몸의 모든 신경을 멀미를 참는 데에 집중시키는 동안 옆 좌석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뭐가 그리도 급한지 덜컹거리는 버스 이층에서 작은 노트북을 꺼내 타이핑하던 남자. 그는 정확히 이삼 년 전의 내 모습과 똑 닮아있었다. 온천욕을 끝내고 돌아오는 후쿠오카 버스 안에서, 급하게 떠난 KTX 안에서, 심지어는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타자를 치던 나. 그때 느낀 감정이 괴로움인지 귀찮음인지 아니면 열정이었는지는 전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누가 흘깃 보든 말든 자기 시간을 보내는 그 사람이 힘들어 보인다거나 그렇다고 자기만족에 젖어있다거나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묘하게 조급함과 불안함이 침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내 페이스대로 흘러갔던 인생,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에 휴가를 끼워 넣은 필요 없이 열심히 평소를 살고 여유가 생긴 후 떠나면 되지 않나. 완벽하지도 않았지만 나쁠 것도 없었던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는 청소를 했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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