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 Apr 22. 2024

감히 죽음을 평가하지 마시오

20240419

독서에 관해 가장 난감한 질문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그때그때 집중해서 읽는 편이지 담아두고 곱씹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올해 읽은 책을 떠올려도 기억에 남는 문장이 없다. 그런데 오늘 책을 읽다 내 생에 가장 최악의 문장을 만나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 매우 달랐다.

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 매우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뒷 내용이 궁금했다. 후킹이었다면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글을 계속 읽다 보니 다음 내용이 따라온다. "그가 치열하게 죽음을 관찰하던 그 30분의 시간 동안 만약 그에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조금의 기력이 주어졌다면, 남은 생명을 단축해서라도 그는 자신이 본 죽음에 대해서 글로 썼을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이어령 (나무위키 발췌)
대한민국의 국문학자,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사회기관단체인, 관료이자 정치인으로서 노태우 정부의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했으며 소설가, 시인이자 수필에 희곡까지 써낸 작가 그리고 기호학자이다.


왜 작가는 이어령의 죽음은 다른 이들의 죽음과 달랐다고 했을까? 달랐다는 글을 접했을 때 내가 느낀 불쾌감은 너무 확신에 찬 죽음에 대한 평가에 기인한다. 죽음에 관해 논하는 작가는 많다. 하지만 타인들의 죽음을 한 사람과 달랐다고 평가하는 작가는 과연 이 사람 말고 또 있을까? 작가는 본인의 다른 꼭지 글에서의 주장처럼 부정적이지도 비꼬지도 대놓고 비하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꼭지 끝까지 읽어내려 마지막 문단을 만났다.

"쓰려는 자는 결국 어디에서든지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이어령과 타인들의 죽음을 굳이 비교해야 했나? 작가의 필력이나 경력을 봤을 때, 그리고 꼭지의 뒷부분을 읽었을 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용 전달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죽음을 특별하게 표현 하면서 나머지 사람들의 죽음을 폄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에 대해 평가를 했다.

당신이 뭐길래?

이렇게 느낀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어쩌면 인문학을 꾸준히 논하는 선한 이미지의 작가라 더 실망이 큰 것 같다.




#한달매일글쓰기의기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