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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Apr 24. 2024

생일 선물로 명품백보다 장미 한송이가 좋은 이유

매일과 별다를 게 없는 생일을 보낸 지 몇 년째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나의 생일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날이 돼버렸다. 며칠 전부터 갖고 싶은 생일 선물을 물어보는 신랑에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마땅히 떠오르는 선물이 없다. 그렇다고 갖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물욕이 많은 사람이라 보이는 예쁘고 멋진 건 다 갖고 싶다. 하지만 신랑에게 말하기는 좀...

결혼하고 첫 생일 선물로 기억한다. 신랑이 갖고 싶은 선물을 물어봐서 큰 가방이라고 했다. 결혼 후 신랑과 함께 출근하고자 자차대신 지하철을 이용했다.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며 명품백을 들고 다닐 만큼 강심장은 아니어서 편하게 들고 다닐 가볍고 세련된 쇼퍼백이 갖고 싶었다. 신랑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생일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퇴근하는 신랑은 빈손이었고 선물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그렇게 쌓인 서운함이 스트레스가 돼서 결국 점심시간에 백화점에 가서 화풀이하듯이 명품 쇼퍼백을 사버렸다.

며칠 후 신랑에게 왜 생일 선물에 대해서 말이 없었냐고 물으니, 저렇게 비싼 가방을 사줄 여유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 역시 공무원 신랑의 벌이를 알기에 비싼 가방을 원한게 아니었고, 갖고 싶으면 그 당시 직정생활을 하며 잘 벌던 내가 사면 될 일이었다. 내가 원한 건 편한 큰 가방이었는데 신랑은 큰 가방은 당연히 비싼 가방이라고 생각했단다. 며칠 후 인사동 데이트를 하며 5만 원짜리 통가죽 쇼퍼백을 선물 받았고, 지금까지도 잘 들고 다닌다. 오히려 내가 산 명품 쇼퍼백은 더스트 백에 고이 들어가서 빛을 보지 못하는 중이다.

그 후로 매년 생일마다 선물을 물어보는 신랑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에게 비싼 선물을 사줄 능력이 안된다는 말을 하던 신랑의 위축된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 역시 퇴직을 하고 신랑 생일 선물에 소홀하게 되며 우리 생일은 그렇게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밍밍하게 넘어가게 됐다.


오늘도 다른 날과 똑같이 일어나 아이를 깨우고 거실로 나왔는데 거실 책상 위에 예쁜 꽃 한 송이가 놓여있다. 활짝 핀 빨간 장미 한 송이가 신랑같이 너무 예쁘다. 짧지만 진솔한 손편지가 사랑스럽다. 신랑에게 전화로 감동을 전하고 다른 날과 똑같은 일상을 특별한 기분으로 시작했다. 밥을 먹다가 나의 특별한 날을 아이도 느꼈나 보다.


"엄마, 아빠가 선물한 꽃 때문에 이렇게 웃고 있는 거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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