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그이와 만난 첫 날에
종로구 인사동 14길 24-1.
'사동면옥'골목으로 들어가면 초행길로는 찾기 힘든 곳.
'수도약국'을 지나 '학교종이 땡땡땡' 앞 골목으로 좌회전 경인미술관 마당을 가로질러 뒷문으로 나가면 또 다른 골목이 나온다. 낮은 담장으로 담쟁이 넝쿨이 보이고, 빨간색 팻말에 눈에 뜨이는 하얀색 글자.
사.과.나.무.
혜화동 하얀집을 나와 그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지혜는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대신 걷는 것 괜찮으세요? 괜찮으면 그냥 걸어볼까요" 성균관대로 올라가는 순대골목을 지나자 이번에는 그가 창경궁쪽으로 가보자고 한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창경원이라 불리던 곳. 그는 창경궁 앞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궁궐산책을 해볼까요" 한다.
궁안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마주한 옥천교 너머 명정문이 보인다. 그는 "단청을 칠하지 않은 명정전이 궁궐같지 않게 소박하고 편안하지 않아요?" 눈주름을 지으면서 묻는다.
지혜는 고개를 돌려 그이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다. 오똑한 콧망울이다.
그는 구두를 신은 지혜에게 안국역까지 한사코 택시를 타자고 한다. "인도음식 먹어봤어요? 퓨전이지만 인도향이 나고, 마당이 어여쁜 집이 있어요." 어스름한 늦봄 일요일 초저녁, 그이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아지트마냥 인사동 골목골목을 지나 고즈넉한 골목으로 지혜와 두번째 식사를 하러 들어간다.
빨간색 팻말에 서툰 사과나무 글자가 무척 귀엽다. 마당에 사과나무가 여러그루 있고 나무 사이사이로 2인 작은 테이블이 있다. 식당 안으로는 프로방스풍의 아기자기한 소품을 배치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어느 음식점에 이런 마당이 있을까? 이런 나무가 있을까?
그는 "치킨달밥이 주메뉴예요. 달(dhal)이라고 인도의 향신료를 사용한 것인데, 닭봉이랑 같이 먹어봐요. 샹그리아도 한 잔씩 할까요? " 또 그 눈주름을 보이면서 권한다. 지혜는 인사동에서 볼 수 없던 낯선 이 독특한 분위기와 낯선 음식에 취하는 듯 샹그리아를 한 모금 들이킨다. 창문 너머 마당에 드리워진 노을은 멋스럽다.
서울시 이쁜 꽃길 안에 들었다는 십 년된 아파트 숲길을 지나 지혜의 집 5동 앞
놀이터 벤치에 그와 나란히 앉은 시각. 22시40분.
일요일 밤은 한껏 조용하고,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다.
인사를 나누다 갑자기 그는 지혜의 손을 잡고 아파트 1층으로 빠르게 걷다 못해 뛰기 시작했다.
1층을 지나쳐 비상계단을 성큼성큼 단번에 3층까지 올라갔다.
센서등이 잠시 켜졌다가 꺼지려는 순간,
그는 잡고 있던 손을 당겨 지혜의 입술에 입맞춤을 한다.
그이는 지혜의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고,
지혜는 그대로 그이의 빠른 심장박동소리를 들었다.
밀어내지 않는 지혜와 그이의 입술에서 향기가 난다. 달(dhal)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