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현이형, 저 왔어요" "지혜야, 계단 세 개 있어. 조심해"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고, 얕은 계단을 내려가며 주위를 둘러본다.
열 평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가게.
건물과 건물 사이 틈새에 있는 가게.
틈새가 너무 좁아서 한 손님이 일어나야 다른 손님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 명동역 충무김밥 쪽 골목과 명동교자 사이 중간 골목. 명동성당으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우회전 막힌 골목에 있는 라면 가게.
정면 한 벽 가득히 하얀색 노란색 메모지가 어수선하게 즐비하다.
왼쪽 벽의 게시판에는 사람들이 압정으로 꽂아놓고 간 명함들이 벽의 반을 채우고 있다. 그 명함들 사이로 지혜는 눈에 뜨이는 금색 테두리 명함을 보았다. 하얀 바탕 파란색 고딕체 글씨.
유유 식품연구소 연구원 그이의 이름.
혼자서 먹을 수 있도록 바 테이블이 양옆으로 길게 되어 있다. 마주 보고 있는 테이블은 없다. 바로 옆에서 나란히 먹게 되어 있고, 길다고 해도 이 공간에 다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동시에 열 명이 될 것 같지 않다.
"안녕하세요"
지혜와 그이가 형이라 부르는 라면 가게 사장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형, 빨계떡 두 개요. 하나는 약간 순하게 해주면 더 좋고요. 여기 셀프인데, 이리 와서 봐봐.
단무지를 파인애플이라고 불러, 냅킨을 입걸레 라고도 한다. 형은 추억과 사랑이 담긴 라면집을 하고 싶대... 좀 멋진 사람이야! 라면 맛이 기막히다. 아주 매울 수 있으니까 물 많이 마셔야 할 것이야"
그이는 다른 날보다 들떠 있는 듯 쉼 없이 부산하다.
사장님은 라면 두 그릇을 테이블에 놓는다.
"그래도 주인장이니 설명은 해주는 게 맞겠죠." 멋쩍은 웃음을 보인다.
"매우 빨갛고, 계란과 떡을 넣은 라면이라는 뜻으로 빨계떡이라고 지었어요"
지혜는 김이 올라오는 라면 그릇을 유심히 관찰한다.
먹기도 전에 혓바닥이 불이 날 것 같이 매워 보이는 빨간색. 맹물을 넣어 바로 끓인 것 같지 않다.
씨앗 간장 모양으로 씨앗 고춧물이라도 있는 것일까?
콩나물이다. '라면에 콩나물을 넣었다.' 기막힌 착상이다. 계란은 스크램블 알갱이처럼 너무 퍼지지도 않았고, 군데군데 적당한 크기로 떠 있다. 라면 면 사이를 비집고 있는 떡의 익힘 상태도 적당해 보인다. 물렁물렁하지도 덜 익힌 듯 두텁게 보이지 않는다. 한 분야에 십오 년이 넘은 내공이 다 녹아있다. 빨계 떡라면.
"형이랑 만난 지는 팔 년쯤 되었지. 회사 들어가기 전부터 알았으니까. 이삼 년 안에 이 라면 가게를 벤처로 키우겠다는 꿈이 있지" 그이는 명동역에서부터 지혜에게 라면 가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이가 화장실을 간 사이, 사장님은 지혜 옆에 와 앉는다.
"그냥 만나는 거 아니죠? 지혜 씨도 나이가 있으니 그냥 만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사장님은 지혜를 보면서 머뭇거린다.
"네, 서로 만나는 중인데요"
"저 녀석이 내가 지혜씨한테 부담 줄까 봐 하던데, 결혼하고 애가 둘인 형의 오지랖 이라 넓다 생각하세요. 처음 본 날 바로 말해서 미안하기는 한데, 팔 년 넘게 봐도 마음 깊고, 한결같아요. 저 녀석이 지혜 씨랑 같이 온다고 해서 내가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지혜씨 집에서도 알아요? 저 녀석 사정을 이야기 한 건가요? "
그이의 인기척에 사장님은 말을 멈춘다.
지혜는 "콩나물이 진한 국물을 시원하게 해주는가 봐요. 콩나물 넣은 라면은 처음 봐요." 수저로 국물을 떠 보인다.
그이에 대해 아직 집에 이야기 하지 않았다.
지혜는 호되게 머리를 맞은 것 같다.
틈새라면의 빨계떡 매운 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