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한글이 위대한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토록 우아하게 이름다운 한글을 내가 말하고 쓴다.
글을 쓸 때는 먹지도 걷지도 못한다는 한강.
한강의 문체 시적 단어의 마법 같은 조합은 숨을 멈추게 했다.
현란하지 않으면서 간결한 서사적 문장은 소름을 돋게 했고 그녀가 그려 놓은 언어의 발자국을 조심스럽게 따라가 보았다.
기우제를 드리는 정갈한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기 전에 내 미천한 문학적 감성으로 그녀에게 범접하기 불편해질 거 같아 두렵다.
노벨 수상작 소설을 한글 원본으로 직접 읽어볼 수 있어 기다리는 여백의 시간이 더욱 설렌다.
그래도 좋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 원본 한글 소설(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을 주문했다. 인터넷 헤비 트래픽으로 접속이 불통되어 이틀 만에 겨우 주문을 했지만 언제 받아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대한민국의 한글과 한강. 단상의 말미에 적었 듯이 노벨 문학 상 작품을 위대하도록 아름다운 한글 원본으로 읽을 수 있다는 대한민국 한글의 자부심에 흥분했다.
나는 오롯이 문학적 시선으로만 한강의 글(작품)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사실 미천한 내 문학적 지식으로 그녀의 수상 작품(채식주의자)을 감당하며 이해할 수 있을는지도 두렵다.
앞서 제가 자주 소통하는 지인 친구 선 후배들께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품에 대한 단상을 보내드렸다.
몇 분들께서 그녀가 좌파 기피 작가라는 비판적 암시를 주었고 우파 평론가들의 비판적 논조를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몇 분들은 대한민국 문학의 쾌거라며 박수를 주시며 서적을 추천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비판에 동승해서 우려의 의견을 주신 분들 모두 한강의 작품을 단 한 권이라도 읽어본 적이 없을 거라 감히 유추해 보다. 다만 이념에 매몰된 글쟁이들은 세계 문학의 정상에 깃발을 꽂은 대한민국 작가의 성공에 좌파 작가라는 딱지를 붙이려고 혈안이 되었다.
대한민국 문학 쾌거의 잔치상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볼썽사나운 비판에 동승한다는 것에 슬픈 생각이 먼저 든다.
스웨덴은 좌파 국가도 아니고 한림원의 노벨 문학 심사위원들은 좌파적 이념의 인물로 구성된 것도 더욱 아닙니다. 심사위원들은 오롯이 문학적 품격의 시선으로만 작품을 평가하고 수상을 결정한 것이다.
그녀의 소설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독자적 한글의 승리라고 손뼉 쳐 주지 못할망정 작가 한강이 이룩한 위대한 한글 문학의 금자탑을 흔드는 것에 절대 동의하지 못합니다. 물론 의견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다만 이견을 이념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사실 한강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문단에 돌아다녔지만 보수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리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여러 국가 문단에서 수상을 하였다.
분명한 것은 노벨 수상 작품 소설(채식주의자)을 우리의 위대한 언어 한글 원본을 읽을 수 있다는 감격스러운 떨림은 조선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이라면 다 같이 자부심을 갖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