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미술관, <우울한가요> #1
<우울한가요, Are you depressed?>, 첫번째 이야기.
2020.05.08-2020.06.21
서울대학교 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 (MoA)
“우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각에 대한 무능력이며, 우리의 육체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있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슬픔을 경험하는 능력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쁨을 경험할 능력도 없는 것을 말한다. 우울한 사람은 만일 그가 슬픔을 느낄 수만 있어도 크게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에리피 프롬, 『건강한 사회』
현대인이라면, 한 번 쯤은 "우울"의 문제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보았을 것입니다.
며칠 전 평소 즐겨보던 드라마에서 한 여자 주인공이 "10대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서른이 된 지금은 어린 시절의 바다 냄새가 그립고, 가족이 그립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며 서럽게 우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지내온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코 끝이 찡해졌었죠.
전시를 소개해도 괜찮을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어느때보다 어둡고, 암울한 시기를 함께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씨는 점점 더 후덥지근 해지고, 몸은 축 처집니다. 갑작스러운 팬더믹 사태와 그리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을 지나면서, 너무 많은 이들이 슬픔 속에 이 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에리히 프롬의 책을 떠올리며, 전시를 소개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울로부터 한 걸음 걸어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시를 찾는 사람들이, 그리고 글을 읽는 분들이 되려 힘껏 슬퍼하고 우울하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작가들이 보여주는 우울과 공명하여, 억지스럽게 지탱하고 있는 삶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두고, 있는 그대로 슬픔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이재헌의 회화들입니다. 이재헌 작가는 주로 흐릿하게 지워진 형상을 그립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캔버스 위에 ‘그리고, 지워진’ 형체들이 가만히 놓여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회화란 “그려진 것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완성된 그림이라면 ‘지운 흔적’은 찾아볼 수 없어야 하죠. 그러나 작가는 붓질과 그것을 지운 흔적을 있는 그대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합니다. 작가는 고정된 경계가 없이, 살아남기 위하여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하여 말하는 듯합니다. 지워지고, 또 다시 칠해진 작가의 그림 앞에서면, 내일 아침의 안녕을 보장할 수 없는 현대인의 불안전성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이재헌 작가의 그림을 지나, 찬찬히 계단을 오르면 문지영 작가의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문지영 작가의 인물은 익숙한듯 어딘가 낯섭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그림 속 여성들은 익숙한 ‘보통의’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불안정하고, 낯선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처음 저도 작품 앞에서 느끼는 이 위화감을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곧 작가가 장애 여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작품 앞에서 느낀 기이한 감정이 이해되었습니다.
작품은 사회가 규정한 주변인으로 살아가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은 장애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는 그들을 “보통”의 범주에서, 그리고 “행복”의 범주에서 과감히 제외해왔죠. 그러나 작가는 그들은 여전히 “보통”이며, “평범한" 사람들로 바라보고,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림에 있는 힘껏 담아냅니다. 그리고 행복한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장애 여성 =우울과 불행”의 프레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안경수 작가는 인공적 개발 현장과 자연풍경의 중간 지점을 그려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작업에는 변화가 있지만, 작가는 온전히 완성되어 유용함을 주는 공간도, 그렇다고 온전히 비어있는 공간도 아닌 잉여공간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습니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 초대된 <모퉁이>는 공사중인 건물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공사중"을 말하는 듯한 천은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 작품 앞에 가만히 섰을 때에야, 저는 단 한번도 관심을 가지고 과 공사중인 건물을 관조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이 참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완성되어 빛을 발하는 사물에만 주목합니다. 따라서 ‘중간 과정’ 속에 있는 건물은 예술의 주제가 될만큼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아무 쓸모도 없으나 자리를 널찍히 차지하고 있는 애매한 사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공사 현상 그 자체에 머뭅니다.
미완의 풍경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할 때, 이윤을 창출하기 위하여 개발을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하여 사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개발 속에서도 여전히 우울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의 삶에 대하여 되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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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2부에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http://www.mu-um.com/?mid=02&act=dtl&idx=35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