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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Apr 27. 2021

선생님이 되면 잊어버리게 되는 한 가지.

학생들은언제나 인정에 목마르다.


    평소보다 40분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오늘은 오전부터 아이들 시험 보강이 있는 날이다. 아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스타벅스에 와서 노트북을 켰다. 낮부터 오후까지 계속되는 보강을 견디려면, 조금 일찍 나와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잠깐이라도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보고, 쓰고 싶은 글을 쓰다가 수업에 가면 아이들을 대할 때 훨씬 여유롭다.




    선생님으로 오래 살아보면 학생의 마음이 어떤지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아마 사회에서 직급이 높아질수록 신입 때의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싶다. 신입사원들은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실수하고 싶지 않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 같이 기본적인 갈망에 늘 갈급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다 보면 이런 신입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서툰 신입들을 답답하게 여기게 된다. 


신입사원들은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실수하고 싶지 않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 같이 기본적인 갈망에 늘 갈급하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기 몇 달 전, 영어 글쓰기를 배워두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현재 통역가이자 번역가로 일하는 친구에게 수업을 부탁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계속되는 짧은 레슨이었지만, 그 수업은 '학생들이 나에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를 자주 생각하게 만들었다. 친구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고, 나는 일주일에 하나에서 두 개 정도 과제물을 제출했다.


    매주 보는 얼굴, 매주 하는 과제일 뿐인데 나는 매 수업 '잘하네'라는 확인이 받고 싶더라. 친구가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피드백을 주지 않고 글에 대한 교정을 시작할 때는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잘했다는 걸까, 못했다는 걸까. 실력은 더 좋아지고 있는 걸까, 이렇게 계속 배우면 늘긴 하는걸가_' 나는 매번 선생님의 확인을 원했고, 선생님의 '좋아지고 있어' 혹은 '원래 천천히 느는 거야'라는 한 마디에 크게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아마 내게 다시 선생님이 생기면, 나는 또다시 동일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생님으로 오래 살아가면서 빠지게 되는 하나의 오류는 

아이들의 기본적인 니즈는 실력 향상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이라는 사실을 까먹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칭찬과 격려, 인정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잘하든 못하든 아이의 과제물을 인정해주고, 지난 시간보다 발전한 부분을 칭찬하고, 수고를 격려해줄 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몸만 크는 '발육' 말고, 마음도 함께 자라는 '성장' 말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다른 누가 압력을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취하여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매번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원한다. 아이들은 늘 잘하고 싶어 하니, 선생님은 그저 그 마음을 인정해주고 알아주면 된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다른 누가 압력을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취하여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잘한 일들은 가벼이 지나가고, 사소한 실수나 부족함에 쉬이 집중하게 된다. 아이들이 늘어야 한다는 압박이 들면,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조급해질 때도 많다. (실력이 느는 건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닌데 말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잘하네' 혹은 '잘하고 있다'라는 말에 인색해진다. 고쳐야 하는 아이의 문제가 크게 느껴지고, 개선점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자주 지적받는 아이는 위축되기 십상이다. 





    학생이 되어보니, 잔소리는 쓰고 마음을 위축되게 하지만, 칭찬과 격려는 나를 움직이더라.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을 때 우리는 인생이 살만해진다. 우리 안에 있는 잘하고자 하는 하는 욕구가 충족될 때 더 노력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미련한 우리는 이 간단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여유로워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여유롭기 위하여 나에게 보다 더 관대할 필요가 있겠다. 내 안에 '괜찮다' 혹은 '잘하고 있다'가 쌓이기 시작하면, 아이들에게도 흘러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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