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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May 19. 2021

다 큰 학생이 거짓말을 쳤을 때.

한 번 더 믿어주고 싶다. 아이가 스스로 책읽기를 좋아할 수 있을 때까지


    목요일부터 시작된 이사가 조금씩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주말에 아버지가 올라오셨고, 밀려있던 집안 청소를 도맡아 하시더니 집이 꽤 그럴싸해졌다. 어제는 수업이 없어서, 일찍이 들어와 좀 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유투브를 누르는 순간 한 학생의 어머님께 장문의 카톡이 왔다. 


    카톡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이가 선생님과 어머님을 속이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수업을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카톡을 읽고 나서도 무어라 답장을 해야 할지 몰라 몇 번이고 카톡을 다시 읽고 있는데, 어머님은 쉬지 않고 카톡을 보내셨다. 



그러니까 이 자식이 책은 안 읽고 인터넷으로 줄거리 요약을 검색해서 수업을 했다는 거다. ⒸTimes




    수업은 아이들과의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아이가 제대로 수업 준비를 해온 것이지 의심이 갈 경우, 아이가 과제물을 스스로의 힘으로 한 것인지, 그리고 수업에 필요한 공부를 제대로 해왔는지를 재점검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게 된다. 아이와 신뢰 관계가 있을 때, 보다 수월하게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고, 또 아이를 믿어준 상태로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줄 수 있게 된다. 





어머님의 연락을 받고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왜 아이는 거짓말을 쳤을까. 무엇이 선생님 앞에서 솔직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일까.


가끔 어머님들 중에서는 수업 방식이 느슨하면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선생님을 속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러나 아이의 태도를 수업 방식의 문제로만 읽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책을 꼼꼼히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질문지를 준비하거나, 아이가 모든 챕터를 요약하는 강도 높은 숙제를 내준다고 해서 변할 아이였다면, 아이는 애초에 수업을 잘 준비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이 읽기 싫고 숙제가 하기 싫은 아이들은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숙제의 그물망을 빠져나간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다.





    아이들의 거짓말은 흔히 있는 일이다. 물론 영어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속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평소 아이의 실력에 대하여 선생님이 정확하게 알 뿐만 아니라 모든 과제물이 노력한 만큼 완수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서 수업은 그렇지 않다. 독서 수업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신뢰 위에서 숙제를 낸다. 국어 수업은 외국어 수업처럼 이미 알고 있는 말을 어떻게 다른 언어로 표현할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어 논술 수업은 책을 읽으며 이야기의 아름다움과 글의 적확성이 주는 시원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수업을 준비하며 아이는 스스로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에 동의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 수업을 통해 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말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법을 연습하기보다, '생각'과 '말' 자체를 다루는 방식을 터득해간다.



이 귀한 시간을 아이가 책을 읽었는지 한 줄 한 줄 확인하기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국어 논술 시간은 이미 알고 있는 말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법을 연습하기보다, '생각'과 '말' 자체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언어의정원




    다음 주 수업 때 아이를 만나면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할 것인가. 며칠간 머리가 복잡했다. 아이가 진실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 것인가_ 무엇이 아이를 위한 일일까. 


    일단은 아이는 자신이 명백하게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 다그치지 않고 그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 감시자가 되고, 아이는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는 순간 아이는 책 읽기와 생각하는 일을 싫어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읽는다는 것은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아이가 그것을 배우게 된다면 수업은 한 결 더 평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가 올 때까지, 한번 더 아이를 믿어주어야겠다. 내가 아이를 가르치는 목적은 아이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책 읽는 즐거움과 재미를 알아가며 활자와 친해지게 도와주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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