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여행에서의 주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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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도시나 국가에 방문하게 되면
관광지를 소개하는 안내 책자를 살펴본다
안내책자에는 각 여행지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위치, 가는 방법, 요금까지 설명하고 있다
신간 여행관련 서적을 보면,
주어진 시간에 따라 꼭 방문하여야 할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안내책자에서 소개하는 관광지가
꼭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는 안내책자가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특히 안내책자에서 소개하는 식당이나 기념품점의 경우
안내책자를 발행하는 업체에 소정의 비용을 내고
홍보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지 대부분의 경우 안내 책자가 소개하는 식당이나 기념품점은
비싸고 맛이 없거나, 비싸고 품질이 떨어져
크게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안내책자에 의존하는 것은
여행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행지를 소개해줄 적절한 안내자를 알지 못하기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안내책자가 안내하는 장소에 가보려고 한다
그런데 안내 책자의 설명에 의하면
훌륭할 것 같았던 여행지가
직접 가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안내책자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편리함으로 우리를 구속하기도 한다.
안내책자가 소개하는 유적지는 훌륭한데
우리의 미적감각이 부족해서
그 유적지의 훌륭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자괴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난하게 안내책자가 소개하는 여행지에 간다
안내책자가 소개하지 않는 곳에서는
마치 기쁨이나 흥미도 없을 것 같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끼고.
"안내책자가 어느 유적지를 찬양한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 있는 평가에 부응할만한 태도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알랭드보통)
안내책자가 어느 유적지를 찬양한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 있는 평가에 부응할만한 태도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여행을 가서 크게 감흥을 느낀 적이 없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서 큰 감흥을 느꼈던 것 같은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세계가 획일화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이태원 근처의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00단길"의 유행이 우리 여행의 흥미를 감소시킨다
처음 경리단길이 생겼을 때, 그곳은 다른 장소와는 특색 때문에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 생긴 "00단길" 들은
그 특색을 잃었다
"00단길"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예쁜 카페와 펍, 아기자기한 소품샵 등이다
어느 도시의 "00단길"을 가더라도
비슷한 풍경이 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프랜차이즈 업체들 때문에
각 도시가 특색을 잃었다
우리는 서울에서도 그리고 파리에서도 베를린에서도
같은 맛, 같은 품질의 햄버거, 커피를 먹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도시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광지 근처에는
특히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들이 즐비하다
프랜차이즈 업체 옆에 또 다른 프랜차이즈 업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가서도 저곳에 가서도
여행지의 특색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편리함이 개성을 잡아먹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여행자들이 여행을 통해 원하는 것 또한
점점 획일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던 여행자들이
이제는 실질적인 기쁨 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쁨에 집중하게 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여행자들은
가장 먼저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멋진 나'를
사진으로 남기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여행자들은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어진 듯 하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유적지를 훼손하면서까지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가서는 안될 곳에 들어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위해 여행을 가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주체적인 여행을 해야 한다.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여행지와 숙소, 비행기를 선택하고
여행지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정할 때
우리는 좀 더 주체적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내책자에 따르는 대신
한 나절 정도는 발길이 흐르는 곳,
또는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에 대한 장소에 들러보자
그리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사진보다는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행지의 정취를 느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여행지에 도착하면 사진을 찍기 보다 그 곳에서의 특별한 정취를 느낀다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진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은 한정적이지만
'그 장소의 느낌'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아 글로서 남길 수 있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
이렇게 주체적인 여행을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안내책자에 실망하거나
사진을 보고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여행지에서
우리 스스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을 마음껏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도 일상에서도
늘 주체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