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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경변호사 Feb 25. 2019

오만함이라는 폭력

이언매큐언 속죄, 영화 어톤먼트를 보며 다짐하는 것

이언매큐언 - 속죄


'넛셀'의 작가 이언매큐언이 쓴 속죄(Atonement)라는 책은

영화 어톤먼트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비밀을 사랑하며, 글쓰기를 좋아하는 소녀 브리오니가 자신이 보고 판단한 것을 온전한 진실이라고 믿고 행동했다가

친언니 세실리아와 그 남자친구 로비를 파멸로 몰아가는 이야기' 입니다(역자 후기 에서 발췌).


제가 평소 하고 있는 일은 늘 '진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말과 저 사람의 말,

이 사람의 주장과 저 사람의 주장 속에서

최소한 어떤 사실을 믿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그 최소한의 사실로 가치판단을 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그리고 영화)을 통해 '진실'과 '자신의 눈과 판단만 믿는 오만함이라는 폭력',

그리고 '상상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시 한 번 혹시라도 스스로의 눈과 판단, 상상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는지 반성해보고 싶습니다.





책과 영화의 줄거리

- 책 '속죄'와 영화 '어톤먼트'



13세 소녀 브리오니는 평소 비밀과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소녀이고,  '아라벨라의 시련'이라는 극본을 썼습니다.

'아라벨라의 시련'이라는 극본을 소개하면서 브리오니는 사랑은 분별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고

적어도 브리오니에게 있어서 충동적인 사랑은 꽤 부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던 중 브리오니는 우연히 친언니 세실리아가 로비와 함께 분수대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세실리아는 로비와 다투는 중이었는데,

브리오니는 세실리아와 로비가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둘이 연인사이가 아닌지 의심합니다.

그러던 중 브리오니는 로비로부터 세실리아에게 사과를 전하는 편지를 전달해줄 것을 부탁받고,

그 편지에는 사과의 내용과 함께 로비가 세실리아에 대해 야릇한 말을 써놓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 편지는 로비의 실수였습니다)


이 편지를 전달받은 세실리아는 놀랐지만, 오히려 로비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로비와 세실리아는 서재에서 사랑을 나누는데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이를 의심한 브리오니가 이 둘을 목격합니다.

브리오니는 이 장면에 대해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폭력을 행했다'고 생각하고

친언니 세실리아를 자신이 보호해야한다고 믿습니다.


그 날 밤 브리오니의 사촌 롤라가 숲에서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브리오니가 롤라를 처음으로 발견합니다.

그런데 브리오니는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이 일로 인하여 로비는 감옥에 가게 되고

로비와 세실리아는 다시는 함께 하지 못합니다.

(실제 범인은 다른 사람이었고, 브리오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브리오니의 오만함





13세의 브리오니는 엄마와 언니에게 인정받고 싶고, 보호받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가로서의 독립성과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브리오니는 작가로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브리오니의 시각에서는 충동적으로만 보이는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 그리고 롤라의 성폭행과 같은 극적인 사건들과

친언니 세실리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과 사촌동생 롤라가 당한 일에 대해 느끼는 정의감 등이

브리오니가 작가로서 늘 꿈꾸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실마리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악당 로비와 피해자 세실리아와 롤라, 그리고 그녀들을 지키는 정의로운 브리오니"가 바로

브리오니가 꿈꿨던 이상적인 소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상에만 머물러야 할 이 이야기를 브리오니는 현실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저 사람이 범인이에요. 내가 똑똑히 봤어요"





미비한 법과 제도


그리고 영국의 수사기관은 어린 브리오니의 말을 믿고

세실리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범인을 로비로 확정한 후 연행합니다.


이후 소설에서 나타나는 이야기에 의하면

세실리아의 가족들도 감히 범인이 초콜릿 공장을 운영하는 폴 마셜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세실리아네 집 파출부의 아들 로비가 범인이라고 단정짓고 로비가 연행되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세실리아는 가족들이 함께 무고한 로비를 범인으로 몰았다고 생각하고

그 후에 가족들과 연을 끊습니다.

이것은 로비에 대한 사랑에서만 비롯된 일은 아니고

세실리아 스스로 브리오니의 잘못에 대한 죄를 속죄하는 마음에서 였던것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것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법의 대원칙입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아무리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였더라도

용의자가 있을 뿐 아무런 증거가 없다면 그 사람에게 죄를 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형사법의 대원칙은 일응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가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피해가 발생했지만 가해자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법이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모두 박탈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이런 형사법의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로비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피해자를 위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만약 이 소설에서도

어린 브리오니의 진술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졌고,

브리오니의 진술이 아닌 다른 증거가 없는 이상

로비를 범죄자로 확정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함을 기했더라면

무고한 로비가 범죄자로서 감옥에, 군대에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으로서의 속죄(Atonment)는 작가인 이언 매큐언이 당시의 영국 생활상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각 인물에 대한 심리묘사도 탁월합니다. 전쟁 장면 등을 보면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는 이런 감정선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브리오니에 대해, 브리오니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며 살아간다는 점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브리오니는 결국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좋지 않은 결말로 끝맺도록 했습니다.

세실리아와 로비는 과연 브리오니를 용서했을까요? 그 질문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남겨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속죄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고,

법조인으로서 더욱 증거와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의해서만

범죄와 그리고 사람을 판단하자고 다짐하였고

누구도 이런 종류의 폭력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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