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에게 자살은 끝 <죽음>이었을까? 현실에서 탈출 <도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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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가 나일 수도 있었다. com
오늘. 한 남자가 자살했다.
그에게 자살은 끝 <죽음>이었을까? 현실에서 탈출 <도피>이었을까?
오늘의 뉴스입니다. 죽어서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독사 하면 독거노인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요즘은 사회와 단절된 청년들의 젊어진 고독사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특수청소업체가 늘어가고 있는 추세인데요. 그들이 찾아간 공간에는 과거와 오늘의 차이를 극복하려 애쓰는 의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외로움에서 치밀어 오르는 고독이 함께 갇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집은 온통 사방이 가로막힌 고독의 벽이었고 사회는 취업난으로 점점 뚫기 힘든 벽이었기에 고립된 어둠 속에 서서히 말라 시들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유 진 작가의 "살아라. 그대는 아릅답다."에서 "처절한 아쉬움이 새어 나오길 멈추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 같습니다. 단 한 사람 만이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 스쳐가는 뉴스를 봤다. 한 청년이 생을 마감한 현장은 비참했고, 덩그러니 홀로 말라비틀어져 갔던 공간이 너무 참혹하게 느껴져서 난 이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떠올려 봤다. 그가 보냈던 고약한 하루는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가 느꼈을 비참한 감정들은 나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니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 사람은 내 또래였고,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던 사람의 일이었다. 나와 친구가 될 수 도 있었던 녀석이었는지도 모른다. 친구가 겪은 일이라면, 나 역시 그럴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 친구가 나일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눈물이 새어 나온다.
괜찮은 걸까요? 괜찮다니...?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대로, 익숙해져 가도 괜찮은 걸까요?
「 영화. 이키가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