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즈 리턴® / 우리가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유.
→ □ 누가 너희더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되라든?
다른 학생들 방해만 하지 말란 말이야. 수업에 안 들어와도 좋으니까
→ □ 자퇴시키는 게 어떨까요?! 코미디언이라도 해 먹겠죠. 뭐.
코미디언은 아무나 하나요?
https// : 욕망을 습득해야 환경에서 아이들은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com
모든 사람은 천재다. 하지만 당신이 나무를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한다면,
물고기는 한평생 자신을 바보로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
나는 태어나서 선생님이라 부를 만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살아생전 어른이라는 존재를 마주한 적이 없다.
선생님 그리고 어른. 그 둘은 나에게 마치 공룡 같았다.
어딘가에 기록되어 사실이라 부르지만 유니콘처럼 마주할 수 없는 그런 존재.
단 한 사람이라도 삶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어른이 없었다.
교복, 두발 규제, 야간 학습 등등 학교에서 나열하는 규칙들은 학생들의 공부를 위함이라고 핑계를 대겠지만 창조성을 죽이는 환경을 만들어서 학생들의 개성을 죽이고 하나로 통일 시킬 때 통제권이 쉬워진다는 숨은 목적을 드러내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자신만의 이득을 챙기면서 너희들을 위한다는 배려심까지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거나 넘어지는 아이들을 다그치며 모르다는 학생들에게 무지를 교육하기보다 부끄러움이라고 학대했다. 그런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이 배우는 건 교육이 아니라 무지에 대한 부끄러운 상처를 수용하는 일이다.
그들은 ...
더 높은 위치에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기보다
아이들의 등 뒤로 바짝 붙어서 오직 속도에 악을 쓰기에 바빴다."
https// : 삶을 유지하는 것과 살아있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com
누군가의 말처럼 답은 옳았지만 질문은 적절치 않았다.
학교에서 배움의 의미는 교육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학습이 아니라 습득에 가깝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는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고 또다시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서는 독립적 가치에 있다. 하지만 학습의 허울의 가치를 내세운 학교의 이념은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훈련시킨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체 부단히도 애쓰며 누군가가 되려 한다.
"나"는 없었지만, "우리"가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는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현실을 적응한 아이들은 삶을 유지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오늘을 살아갈 방법 조차 모른다.
꽃은 피지 못하고 가지만 흔들린다.
그 초라한 움직임으로 생명을 증명한다.
그렇게 오늘도 버티어내는 걸로 청춘을 대신하는 것이다.
캡틴이 말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 인거야. 「 죽은시인의 사회. 1989 」
그랬다...
삶을 유지하는 것과
생에 살아있는 것은
명. 백. 히.
다. 르. 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그런걸 배우지 못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