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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Feb 29. 2024

[e] 나에게 내가 없었다. 난 유령이 되었다.®

■ 내가 참을 수 없던 건, 쓸데없이 무의미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https// : 단 한 번도 나에게 다정한 적이 없던 그 시절은 극야의 계절이 되었다. com


누구나 한 번쯤은 절망의 시절을 겪는다. `잠깐만! 이건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가? 내가 그렇다고 누군가도 반드시 그런다는 법은 없는 거잖아. 그럼. 누군가는 평생을 백야의 계절에 산다는 건데. 다행이네. 여하튼 그 시절이 나에게 그랬다.


내가 세상에 처음 눈을 뜨고 간호사가 나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갈길 때부터 운명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친절한 적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에 이야기하자면 2박 3일은 걸릴 테니까 넘어가자. 하지만 뭐.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현실이 날카로워질수록 고통이라는 감각이 무뎌진다는 건. 삶을 견디는데 유용한 근육이 되었다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까.   


하지만. 빌어먹을... 고통과 우울은 차원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누군가의 대사를 인용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어떻게 보면 고통 참 쉬워요. 그냥 참으면 지나가니까. 그래서 저는 고통을 주는 것보다 절망을 주는 편을 선호하죠. 이제 살아있다는 게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진짜. 절망이 뭔지 느끼게 해 줄게. 


솔직히 난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추락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했다. 여태껏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심각하게 뭉개진 채 바닥에 처박혀 살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한 생각에 불과했다. 우울은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지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젠장. 현실에 바닥이 끝이 아니었구나. 이리도 끔찍한 체감할 수 있는 삶이라니. 정말 가혹할 정도로 아름답구나. 


우울증의 최악은 자기 학대다. 진정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시간이 나를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 내가 참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진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놀라운 진실을 깨닫게 된다. 


죽는 것도 노력이다. 난 죽을힘도 없었다. 그저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무것도 못하고 나를 저주하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내가 가진 건 나뿐이었는데, 내 곁에는 나밖에 없었는데, 그걸 모른 체했다.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라고 느껴진 날. 나를 간절히 필요할 때조차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외면했다. 때리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방임도 명백한 학대다. 나 스스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학대당한 것이다. 

 

그 시절이 온전히 나의 잘못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수시로 차오르는 울분을 난 차마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다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일인데도 나에게 상처 주는 짓거리를 참 열심히도 해댔다.


눈을 뜨면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을 저주하면서 벼랑 끝 낭떠러지로 밀어 세운다. 하루 종일 나를 한시도 내버려 두지 않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마주하는 순간 나는 끝내 나에게 질려 버린다. 그렇게 하루하루 감정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어느새 그 짓거리도 못할 지경이다. 

나에게 상실할 수 있는 인간성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나에게 내가 없었다. 난 유령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는 걷는 걸음은 흔들거리고 비틀거리기 마련이다. 시간은 그저 스쳐 지나가고 매일이 지겨워지는 삶은 한없이 위태롭기만 하다. 공허함은 아픔으로만 채울 수 있고 고통만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본능에 따라가는 삶에 대한 대가의 상처는 주홍글씨로 새겨지고 그 끝에 남겨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이 현실로 막혀버린 장소에 찬란한 빛이 닿지 못한다. 그리하여, 단 한 번도 나에게 다정한 적이 없던 그 시절은 극야의 계절이 되었다. 


살아가는 건, 그저 견디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참을 수 없던 건, 쓸데없이 무의미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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