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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May 09. 2024

[e] 그 시절 우리가 있었다.® #1

■ #01. 이 아이 나름대로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 Prologue


한 사람의 길고 길었던 인생이라는 길이 마침내 그 사람 발밑에서 길이 끊기고 그 길 끝자락에 멈춰 서 있다. 그 사람은 차분히 고개를 돌리고 이내 두발을 옮기며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 본다. 그 순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들만이 추억이라는 퍼즐 조각되어 인생이라는 틀 안에 맞춰져 끝내 완성이 되고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될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은 그 사람이 보내온 시간이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그 사람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니었던 것뿐이다. 그 사람이 살아왔었던 그 찰나의 순간마다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갔지만 인연이 아니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나의 인생을 마지막으로 뒤돌아 봤을 때, 그 시절 우리가 함께 했었던 그 유일한 순간들을 마주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애써 기억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절 그 순간들이 나의 인생이라는 틀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가 있었다" 





#01. 내 하루에 정적을 깨트리는 유일한 소리


어떤 날 중에 그런 날. 하루를 시작하는 알람 소리부터 침대에서 일어나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이 힘에 부치고 힘겹게만 느껴졌다. 그것도 모자라 1분 1초마다 끝없는 무력감과 공허함이 나를 덮쳐왔다. 심지어 밥을 먹는 순간에도 밥을 먹는다는 느낌보다 그냥 밥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꾸역꾸역 넘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그 힘겨운 시간들을 억지로 밀어내려 애썼지만 시간은 너무 더디게만 흘러가고 시간은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랬다. 오늘은 하루가 너무 길게만 느껴지던 날이었다. 내 몸뚱어리를 이끌고 집으로 가는 길. 무심코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왜 이리 처량해 보이던지... 난 그만 나를 외면하고 말았다. 결국, 그 뒤에 다가오는 쓸쓸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내,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어 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물들어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그 시절, 나라고 의심조차 못했었던 그 소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렇게 한참을 길 위에 떠돌아다니며 방황에 끝에 다다르고 나서야 내 안에 담아두기에 벅찬 감정들을 애써 질질 끌며 집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시간. 억지로 마음을 달래고 침대에 누워 현실에서 벗어나려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내 하루에 정적을 깨트리는 유일한 소리" 습관적 아이러니하게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녀석의 목소리는 이리저리 비틀거리다 휘청거렸고 그동안 어떻게 참았었는지 참 오랫동안이나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취한 목소리로 참 열심히도 주절거렸다. 근데 이상하게 잘 알아듣지도 못하게 들리는 녀석의 취한 목소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은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취한 상태로 전화 오는 날이 늘어났다. 오늘도 녀석은 현실에 비틀거리다 결국 술에 취해 주저앉아 나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걱정이 된 나는 "그만 좀 먹어라" "너 그러다 진짜 죽겠다"라고 말했더니 녀석이 말했다."나 살려고 이러는 거야" “이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 순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한동안 내 곁에서 침묵은 멈추고 떠나가지 않았다.      


그랬다. 녀석은 취하고 싶어서 혹은 현실에서 도망치려 술을 먹고 있는 게 아니었다. 회사에서 영업의 업무는 사무실이 아니라 모두 술자리에서 결정되었다. 녀석은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는 게 일이 되는 현실에서 살고 있었다.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술에 자신을 내팽개칠 뿐이었다. 녀석이 나랑 통화하기 전에 억지로 입안에 꾸겨 넣은 술이 몇 잔이나 되는지. 몇 번이나 토를 하고 몇 번이나 속을 게워 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녀석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한 혹은 내일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아무리 취해도 "힘들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녀석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입 밖에 내뱉는 순간 자신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난 사람이란 모두 다 각자의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눈으로 보이는 시야만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절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아니 그 누구도 그럴 권한은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누구 나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고 힘겨운 현실의 무게를 감싸 않고 살아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의 방식을 존중할 뿐이다.      


노력이라는 것은 상대평가가 아니다. 내가 어릴 적 녀석의 담임 선생님이라면, 부모님에게 드리는 통지표 등수 밑에 이렇게 남겼을 것이다. 숫자만으로 이 친구를 평가하지는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전 이 친구가 얼마나 노력하고 애쓰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스스로 책임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멋진 친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지 이 아이 나름대로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오늘따라 술 취한 그 녀석의 목소리가 한없이 처량하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 녀석이 내는 목소리가 내가 소리 내지 못하는 목소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릴 적부터 우린 언제나 함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빛나는 것들은 항상 빛처럼 다가와 빛처럼 사라져 갔다. 그 빛나던 시절의 의미를 몰라서 아직까지 우린 이렇게 과거를 빚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과 너무 다르게 그 마음과 너무 다르게도 말이다."      


오늘은 나에게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고 힘겨운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롭지는 않았다. 너무나 버거워 보이는 이 현실이 나를 아무리 힘겹게 하더라도 내 앞에서도 아닌 내 뒤에서도 아닌 항상 옆에 함께 해주는 사람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현실이란 충분한 가치가 있고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걸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PS...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왜?! 그 쓰디쓴 술을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술이 가끔은 달콤하게 느껴질 만큼 술에 익숙해져 있다. 어릴 적에는 술을 마실 때가 되면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그렇지가 않다. 인생이라는 쓴맛을 처절히 느끼고 있는 지금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것에 대해 익숙해진다는 걸까?! 씁쓸함을 채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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