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요약하자면 ‘선택’에 대한 영화라고 하겠다. <미스터 노바디>는 매 순간 찾아오는 선택의 기로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지는 인생에 대한 환상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니모(Nemo). 라틴어로 ‘아무도 아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름만 놓고 보면 흔한 존재이기를 자처하는 듯한, 그러나 특이하게도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닌 니모에게는 일생일대의 순간이 찾아온다. 부모가 이혼하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소년인 그는 엄마와 아빠 중 누구와 함께 살 지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영화는 그때를 기점으로 하여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인생을, 심지어 다양한 경우의 죽음을 모두 보여준다. 엄마를 따라간 니모는 하필이면 계부의 딸인 애나와 사랑에 빠지고, 아빠 곁에 남았던 니모는 어두운 파티장에서 만난 앨리스에게 반한다. 구애에 실패한 그는 질투심에 진이라는 또 다른 소녀를 사귀게 되고, 구애에 성공한 그에게는 그러나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이 예고되어 있다.
소년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그가 품은 모든 경우의 수가 평행하게 그러나 꿈결처럼 뒤죽박죽 섞이며 흘러가는 가운데, 여기에는 불쑥 수백 살의 노인이 되어 나타난 니모의 뜻 모를 이야기까지 더해진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화면의 SF적 미장센은 뚜렷해져,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공상인지 조차도 묘연해진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자락에는 어린아이였던 니모가 엄마와 아빠 중 누구도 선택하지 못하고 외딴길로 도망쳐버리는 제3의 이야기가 등장하여, 실은 러닝타임 내내 펼쳐졌던 에피소드들이 모두 찰나의 순간 안에 그려진 수 갈래의 미래에 불과하다는 반전 아닌 반전이 공개된다.
그러고 나면 수많은 니모가 죽거나 죽음을 겨우 면했던 것처럼 할아버지 니모 또한 결국 숨을 거두는데, 이때 기다렸다는 듯 시간이 멈추었다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홀연히 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그는 앨리스도 진도 아닌 애나의 곁에 앉는다.
차마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어서 도망친 어린 니모를 보여주고, 마지막으로는 그래도 꼭 한 가지를 택한다면 누군가와 서로 열렬히 사랑했던 삶으로 되돌아가는 늙은 니모의 모습이 교차된 결말 후, 엔딩 크레딧 앞에는 ‘지레짐작하는 미래’와 ‘지나온 것들에 대한 상념’ 사이에서 ‘지금’을 바라보려 애쓰고 있었던 내가 앉아있었다.
갓 스물을 넘긴 무렵에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저벅저벅 시간을 되돌아가는 노인의 그 호쾌한 웃음이 전혀 와 닿지 않았다. 그냥 노망이 났나 보다 했다. 몇 년이 지나 두 번째로 영화를 보았을 때는 섬짓하게도 그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더 이상 ‘선택해보지 않은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서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로 이 영화에 대해서 곱씹어보는 지금에는, 그러니까 “넌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또는 “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라는 말을 동시에 듣고 있는 나는, 니모가 웃은 이유가 그에게 ‘선택에 관한 무의미한 걱정’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의 인생은 선택이 전부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금 비정하게 말해서, 선택한 만큼 인생이 컨트롤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비극은 어디에나 있었다. 마찬가지로 기회도 어디에나 있었다. 아무리 미래가 보인다 한들, 끊임없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뻗어나갈 것이라면 그건 그냥 모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 그에게도 있었으리라. 나에게 지금 막 찾아온 것처럼.
<미스터 노바디>는 선택의 연속인 인생에서 그 선택의 순간이 가지는 무게, 막중하지만 한편으로는 허망하리만큼 보잘 것 없기도 한 그 ‘망설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현실의 어린 니모는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미래 앞에서 선택 자체를 회피해버리지만, 노인 니모는 소년이 내다본 모든 미래를 관통하여 존재하는, 즉 그 모든 삶의 변수로부터 가능한 희로애락을 초월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니 “어차피 뜻대로만은 되지 않을 인생, 자신 있게 선택하고 자신 있게 살자”는 게 노인의 웃음이 가진 속뜻이겠거니 싶다. 한 때 노망 났다고 생각했던 것, 조금 미안합니다.
니모에게는 그 이름만큼이나 정말 한 사람의 삶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첨예한 순간과 사건 사고가 닥쳐온다. 물론 영화라서 가능한 미래적이고 비현실적인 광경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에피소드들은 나 또는 내 주변에 어렵지 않게 존재하는 삶의 단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아무도 아닌 남자가 감정이입을 촉발하는 순간은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서 영화와 나를 둘러싼 현실이 서로 엉기며 맞닿는 순간이기도 했다. 니모와 애나가 이불 밑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들의 바짝 선 솜털에 화면의 초점이 맞추어졌을 때에는 나 또한 머리끝이 쭈뼛해졌을 정도니까. 나에게 이 작품이 그저 일장춘몽의 속기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카메라의 뜨겁고 섬세한 시선 덕분이리라.
니모는 냉정한 인생 시뮬레이션의 마루타 같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자신의 살갗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그토록 아무도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