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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Apr 09. 2016

어바웃 해피니스

어바웃 타임 (201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흔할까? 적어도 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화 <어바웃 타임>이 내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그 솔직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나도 아주 줏대 없이 살아온 건 아니지만, 매년 좌우명을 적게 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고 나서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 같은 걸 입 밖으로 소리 내어볼 일이 없었다. 물론,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 자문자답으로 지새우는 밤들은 찾아왔다.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냐 하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건 곧 언제나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바웃 타임>이 '시간'보다도 '행복'에 대한 영화로 여겨진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영화사의 역대급 사랑꾼으로 칭송받아 마땅한 주인공 팀은, 사실 허우대만 좋을 뿐 평범하고 어수룩한 시골청년이다. 단지 그에게 한 가지 놀라운 비밀이 있다면 그를 포함한 가문의 남자들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그 믿지 못할 능력을 사용해 얻고자 하는 건 다름 아닌 여자친구. 그러나 시간을 돌려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씁쓸한 깨달음만 얻은 채, 그는 그의 청춘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첫 퀸카를 떠나보낸다.


그래도 언젠가는 인연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런던으로 상경하는 팀. 괴팍한 극작가 해리의 집에 얹혀살며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어느 날 직장동료를 따라갔다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전 상태의 이색적인 레스토랑에서 낯선 여자들과 합석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인생의 그녀, 메리를 만난다.


그날 밤 휴대폰에 그녀의 전화번호를 고이고이 모시고 집에 돌아온 팀은 해리로부터 그의 배우들이 대사를 까먹어 공연을 망쳤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망연자실한 그를 위해 마블 히어로라도 된 마냥 시간을 되돌려 공연 사고를 바로 잡는 팀. 그러나 해리를 도움으로써 그날 메리와의 만남은 그만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그녀의 전화번호 또한 그의 주소록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제 팀은 그녀가 런던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만 희망을 건 채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과는 물론 대성공. 그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인 시간여행을 요리조리 활용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좋아한다고 했던 것들을 그 이유까지 정확하게 기억해내어 그녀에게 호감을 사고, 서툴어 보이기 싫은 수컷의 자존심인지는 몰라도 여러 번의 첫날밤을 번복하여(?) 결국 그녀가 자신에게 완벽히 반하게 만든다! 이런 귀여운 남자 같으니라고. 이 남자의 귀여움을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렷다.







팀은 이제 그 모든 것들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어떻게 모든 것을 온전히 붙들고만 살 수 있겠는가? 그는 인생의 치트키 같았던 시간여행에서도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잘못 되돌리면 영영 되찾을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불행을 막고자 순수한 열정으로 많은 것을 바꾸고 수습하러 떠났던 팀은,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지금'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아쉬운 것을 만들지 않기로, 그리고 아쉬워도 아쉬워하지 않기로 한다. 현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늘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살자고. 어쩐지 바르고 슬기로운 인생 교훈이 따로 없다.


그런 메시지에 더불어 맑은 자연풍경, 맑은 사람들, 그 사이에 오가는 온정과 유머는, 마치 이 시놉시스야말로 시간을 거슬러 온 전래동화인가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훈훈해서 영화밖에 앉아있는 내 캔맥주의 뜨뜻 미지근한 온도를 실감케 하더라. 그리고 그 미지근해진 맥주 앞에서 나는 눈물 콧물을 그렁그렁 흘려보냈다.  


현재에 충실해야 된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하지만 영화가 설파하려는 바가 때로는 꽤 직설적으로 들려와도 그것들이 퍽 불쾌하지 않았던 이유는 순수한 팀과 메리 그리고 그들의 가족에게 너무나도 정감이 가서였다. 팀의 해사한 미소에서 그의 기쁨의 근원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얼굴을 마주할 때의 행복이 어떠할는지 엿볼 수 있었으니까. 모 사이트의 어느 관객이 한 줄 감상평으로 '영화가 끝나갈수록 주인공이 점점 잘생겨 보이는 기적을 맛볼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참말이었다.







경력에 한 줄 쌓는 일보다 조금 더 근원적인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판단은, 나의 경우에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부딪혔을 때에만 그리고 때로는 아주 큰 손실을 겪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답은 없고 믿는 게 답인데, 때때로 쐐기를 박는 그 망치질이 어설퍼 아프고 짜증이 나고 불안했다. 하물며 내 발등에 찍은 건 또 어쩌고. 지금 문득 떠오른 것인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그러나 후회는 불행의 어머니가 틀림없다.


그동안은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답'을 찾기 위해, 내가 무심코 이끌려가고 있는 걸 설명해줄 낱말들을 고르는 시기를 보내왔다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쓸데없는 의구심이나 부끄러움을 걷어내는 작업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기분 좋음에 보다 솔직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듬뿍 사랑받을 때 내 인생이 천 배 만 배쯤 더 달콤해지는 것 같다고.


행복을 행복하게 곱씹어보게 하는 좋은 휴양지 같았던 영화, <어바웃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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