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유진 Jan 22. 2016

관광지가 아닌 현실의 그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2011)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나서며 하는 일 중에 하나가 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돌아온 뒤에야 봤고, 후회했다. 사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데도 미처 준비하지 못 했던 것이 비단 이 영화뿐은 아니지만.


어느 기사에서 관객 유치를 위해 제목을 보다 흥미롭게 바꿔서 수입한 사례로 이 영화가 꼽혔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 보지 않았던 나에게 이 영화의 달착지근한 한국식 제목과 포스터는 어쩐지 불편했다. 그래서 안 봤다고 하면 핑계려나. 뚜껑을 열어보면 영화는 웃기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을뿐더러, 현실적이다. 그다지 우습거나 즐겁지 않다는 말을 대신하기 위하여 '현실적'이라는 말을 쓰는 상황에 유감을 느낀다. 아, 심지어는 삭막하다.


이 영화를 나에게 소개해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산 친구는 정말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까지 영화 속 장면과 도시 풍경이 너무나도 똑같아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귀국하고 나서 본 영화 속 풍경은 내가 한 달이나 머무르며 돌아다닌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울하고 "제멋대로"였다. 렌즈는 삭막하고 삐딱한 지점만 골라 지적하듯이 포착하고, 내레이션은 그 도시를 가득 메운 건축에 어떠한 질서도 조화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한 달 동안 대체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영화의 원제목은 Medianeras. 우리말로 측벽이고, 말 그대로 건물의 옆면을 가리킨다. 측벽이라니! 내가 기억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풍경에는 측벽이 없었다. 한 블록 안에 있는 모든 건물들이 옆면 없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았던 꽁그레소 근처 호스텔도, 가장 인상 깊었던 관광지인 레꼴레따 묘지마저도 그랬다. 서울과 달리 모든 집이 빈틈없이 붙어 지어졌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는 데에서 내 지각은 그쳤던 것이다. 그렇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없는 듯이 존재하는 벽이 바로 측벽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 당시 직접 찍었던 사진. 모든 건물이 이렇게 붙어 있다.



영화 속의 한 장면. 옆 건물과의 고저 차이에 의해 밋밋한 측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영화에서도 측벽은 좀체 드러날 일이 없는 무의미한 공간에 불과하다. 언제든 건물과 건물 사이에 가려 숨을 수 있어야 하는 존재다. 창문도 장식도 없기에 옥외광고판으로나 사용된다. 그런 공간에서, 외롭고 고독한 현대인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실소를 머금게 하는 에피소드를 빚어낸다. 주인공 남녀는 같은 블록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 주민이고, 아파트 사이의 건물들이 낮아 무용지물의 측벽은 훤히 드러나있다. 그들은 혼자 살아도 갑갑한 집에 조금 더 햇볕을 들여오기 위해 건물 측벽에 무허가 창문을 뚫게 된다. 그리고 대형 광고 이미지 속에 절묘하게 위치를 잡은 서로의 창문을 발견하면서 처음으로 그 존재를 인지한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신발 상자" 같은 집, 무허가로 뚫는 창문 등은 호스텔을 떠나 세를 내고 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을 이야기들이다. 이쯤 되면 '남미의 파리'에 대한 로망에 조금은 때가 탈 수밖에 없다. 이국의 작열하는 태양, 조각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건물들, 한가롭고 호젓한 공원과 길가, 추파를 던져대는 남미 오빠들(?)에 가려서 나는 언제고 관광객이었으며, 항상 파사드만을 보았던 게 아닌가? 건축에서 파사드란, 사람으로 치면 증명사진 속 정면을 응시하는 이목구비와 같다. 한 달 동안 도시의 쌩얼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남미에 널리고 널린 소매치기와 강도가 조금은 덜 할 것 같은, 세련되게 치장된 곳만을 찾아다녔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자신들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광고하지 않는다. 탱고? 코빼기도 안 비춘다. 철저하게 그 속에 살고 있는 그들 자신을 위한 영화로서, 여러 가지의 심기 불편한 문제를 끌어안은 삶의 공간으로서의 도시와 건축을 냉담하게 조명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제목을 저렇게 달달하게 바꿨냐고? 영화가 다큐멘터리 급의 점잖은 삿대질로 시작하긴 하지만, 그 삭막함 안에서 어렵게 찾아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무허가 창문이라는 작은 반항으로 시작되어 평생을 들여다봐도 찾을 수 없었던 도시 속 월리를 발견하게 되기까지, 같은 블록의 아파트에 살지만 각자의 방에 고립되어있었던 두 남녀가 서로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로맨스 영화다운 낙관과 희망이 존재하는 셈이다. 좋은 것만 보고 떠나려는 여행자의 낭만에는 찬물을 끼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특별한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림은 남을 것이다.



'월리를 찾아라'의 한 페이지처럼 제작된 깔끔한 디자인의 오리지널 포스터.


매거진의 이전글 싱글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