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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운명을 결정하는 힘은

by 이상민 NIRVANA


은주는 오랜만에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한 달 전쯤 부모님에게 남자친구를 인사시킨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겁니다. 보수적인 은주의 아버지는 남자친구가 연하라는 사실에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남자친구의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던 은주에겐 고민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 엄마가 두 사람의 궁합을 보았는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며 웬만하면 헤어지라고 합니다.

어떡하면 좋을까.




은주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내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느라 계속 굳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와인을 마시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은주는 고민 끝에 남자친구에게 부모님이 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남자친구는 덤덤하게 은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궁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빙그레 웃음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너무 고민하지 말라며, 은주를 다독여주었습니다. 오히려 더 어른스럽게, 그녀를 감싸주는 좋은 남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주점을 나와 술도 깰 겸 밤거리를 조금 걸었습니다.
조금 그렇게 걷다가 은행 건물 앞에 있는 분수대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분수대 중앙에 작은 홈이 파여져 있는데 그곳에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젊은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점쳐보기 위해 던져놓은 동전들이었습니다.
문득, 남자친구가 은주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이거 해볼래요. 자, 여기 동전."

은주는 남자친구가 건넨 동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던졌죠. 동전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길게.

핑그르르르르..

그렇게, 그렇게 날아간 동전은…….
안타깝게도 홈을 살짝 비껴가고 말았습니다.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 은주를 본 남자친구는 살짝 웃어 보이더니 팔까지 걷어붙이며 자기 하는 걸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엔 내 차례에요.”

그런데 그는 동전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더니 갑자기 분수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습니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남자친구는 중앙까지 들어가서는 몸을 숙여 은주가 던졌던 동전을 집어들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것이 인연이고… 음, 그것이 운명이라면… 음, 그 운명의 끝은 내가 결정할 거에요. 이렇게.”


남자친구는 동전을 홈 안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봤죠? 운명을 결정하는 힘, 별거 아니잖아요. 던져서 넣든, 이렇게 직접 가서 넣든, 스스로 결정하는 거잖아요. 나 믿어줘요. 믿고 따라 와줘요.”

남자친구는 옷이 젖은 채로 나와서 양팔을 벌리며 말했습니다.
은주는 기다릴 것도 없이 남자친구의 품에 안겼습니다.

“믿을게, 아니 믿어요.”

둘은 그렇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 증표인 분수대 안의 동전이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두 사람은 여러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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