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VANA SAGA
선택의 결과
“잘 봐, 내가 누구인지. 큭큭큭.”
아! 어떻게 이런 일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갑자기 웃음을 멈춘 현지가 한 차례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팔과 다리가 기형적으로 늘어나는데 이어 목까지 기린처럼 길게 늘어났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괴상한 소리를 토해내면서 두 눈의 안구가 툭 소리를 내면서 빠져나와 바닥을 구르고, 순백의 피부가 찢겨 나가고, 다시 그 안에서 검붉은 새살이 돋아나왔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워서 나는 뱃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내고 말았다. 그렇게 돋아난 새살은 점점 투명해졌고, 동시에 얼굴의 형태가 기이하게 변형되었다. 잠시 후, 그 형태를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지금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이제는 더 이상 현지라고 부를 수 없는, 그것은 요괴(妖怪)였다.
현지가, 아니 요괴가 내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큭큭큭, 아쉽군. 모처럼만에 입맛이 당기는 먹잇감이어서 천천히 즐겨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귀찮은 방해꾼이 나타났다고 하니, 중간과정은 생략해야겠어.
요괴는 마치 검붉은 젤리로 만든 기형의 인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몸체가 투명해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뱃속에 사람의 뇌 같은 것이 꿈들 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또 다시 구토를 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으으으…….”
사타구니가 흥건해진 느낌이 들었다.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이다. 다른 때라면 무척 창피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여기서 달아나고 싶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빠져서 간신히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절망적이다.
“사, 살려줘…….”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요괴의 긴 팔 끝에 달린 갈고리 같은 손이 스르륵 소리 없이 내 머리위로 내려왔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해주면 고통 없이 끝내줄게. 알았지? 자, 아까 찾아왔었다는 그 놈이 어디로 간다고 했지?
눈을 감아도 요괴의 끔찍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모…몰라, 모르겠어. 그…그냥 우리보고 여…여길 떠나라고 하고는…… 연기처럼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어. 저…정말이야, 그게 다라고.”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대답이 너무 성의가 없잖아. 맘에 들지 않는걸. 그냥 이대로 죽어버려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괴의 갈고리 같은 손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순간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실제로 허공에 떠있었다. 그리고 내 허리를 안고 있는 억센 팔, 역겨울 정도로 진한 향수냄새―나를 구한 것은 바로 산장주인의 부인이었다.
“호호호. 얜 내 몫이야. 멋대로 죽이도록 놔둘 수는 없지. 넌 다음 차례를 기다려.”
한 팔만으로 나를 안고 허공에 날아올랐다가 가볍게 착지한 여자는 새빨간 입술을 이죽거리며 요괴에게 비아냥거렸다.
―방해하지 마! 방금 못 들었어? 그 자가 여길 왔었다고 하잖아.
요괴가 강렬한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여자가 나를 단단히 붙들고 있어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혹시, 이 여자도 요괴란 말인가. 차라리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빨리 깨어나고 싶었다.
“그 자라니? 설마 도계감찰이 눈치를 챘단 말이야? 그렇다면 빨리 알려야지. 뭘 꾸물대고 있는 거야!”
그때였다.
번쩍! 벼락이 치고 푸른 전광이 폭풍처럼 방안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아래층으로부터 들려 왔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벼락이 이끌고 온 천둥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요괴와 여자가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놈이다! 놈이 왔어!
요괴가 다급하게 외치며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여자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나를 내팽개치고는 요괴와 마찬가지로 마치 형체가 없는 존재처럼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역시 여자도 요괴였던 것이다.
요괴들이 사라지자 나는 가까스로 기운을 차리고 방을 빠져나왔다. 현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내가 현지라고 믿었던 것이 요괴였으니, 진짜 현지는 이 산장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것이다. 아까 그 사이코 같은 자식이 말했던 것처럼 여기는 지옥보다 더한 곳이다. 1분 1초라도 현지를 이런 끔찍한 곳에 혼자 둘 수는 없다. 어서 빨리 찾아야 한다. 요괴들이 현지를 해치기 전에, 내가 그녀를 구해야한다. 내가!
벽을 짚어가며 겨우겨우 복도로 나오자, 아래층에서는 흡사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내지르는 기합, 조금 전에 들었던 그 끔찍한 비명소리, 집기들이 부서지는 소리! 그 소리들에 정신이 팔려 멍하니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미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나는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악!”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떨어졌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위치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공교롭게도 나는 불가사의한 전투가 벌어지는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앞쪽에는 조금 전의 그 요괴가 그릉그릉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독이 바짝 오른 독사처럼 몸을 도사리고 있었고, 뒤쪽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금에 와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를 늘어놓던 사이코 자식이 요괴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것 같은 진녹색 체액을 뒤집어 쓴 채 요괴와 대치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내게 도움을 줄 것 같진 않았다.
고개를 슬쩍 돌리니 한쪽 구석에서 산장주인과 그의 아들이 겁에 질려 떨고 있었고, 앞서 내려왔던 여자는 허물만을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사이코 자식이 해치운 듯싶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제 만족하나? 이게 당신이 선택한 결과야.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여기에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요괴의 긴 팔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들었지만, ‘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기습에 실패한 요괴가 분하다는 듯,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엄청난 괴력에 낡은 마룻바닥이 부서지면서 파편들이 내게도 날아왔다. 나는 사력을 다해 몸을 날려 구석진 곳으로 피했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부서진 마룻바닥의 파편들이 창살처럼 꽂혔다.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고슴도치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연거푸 공격에 실패한 요괴는 다시 한 번 갈고리 손을 휘두를 기세였다.
―지금 한눈을 팔 여유가 있나! 죽어라, 운사!
운사? 요괴는 그를 운사라고 불렀다. 무슨 뜻일까?
쐑, 하는 소리가 울리며 요괴의 팔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 운사라고 불린 ‘그'를 공격했다. 그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차갑게 내뱉었다.
“쳇! 역시 령(靈)보다는 괴(怪)가 물리력을 구사해서 그런지 박력이 넘치는걸. 방심했다가는 낭패를 보겠어.”
엄살처럼 들렸지만 그의 입가에는 장난스런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 미소가 거슬렸는지 요괴가 정신이 얼얼할 정도로 높은 음역대의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서 내 눈에는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요괴의 손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그의 몸이 엷어지더니 투명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는 벌써 요괴의 뒤쪽으로 멀찌감치 달아난 후였다. 정말로 놀라웠다. 너무 빨리 움직인 나머지 잔상이 남았던 것이다. 만화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에 나는 넋이 나가버렸다. 내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지박령이니 요괴니 하는 것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그런 것들과 대등하게 싸우는 ‘그’도 내게는 이해불가의 존재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이제 결판을 내볼까?”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흥!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요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는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거렸다.
“넌 애초에 내 상대가 아니었어. 너무 약해서 힘 조절도 안 된다고.”
요괴가 그의 도발에 발끈하여 갈고리 같은 손을 벼락처럼 내뻗었다.
―죽어라! 운사!
그가 가볍게 어깨를 비틀며 피하자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던 갈고리 손이 목표를 잃고 기둥 하나를 박살냈다.
“너무 느려. 그래가지고 내 머리카락 하나 건드릴 수 있겠어?”
‘어'라는 말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고무공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순간적으로 요괴와 그의 모습이 포개졌고, 차가운 금속성의 빛이 몇 번인가 번쩍였다.
그와 간격을 벌리며 떨어진 요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뒤로 서너 걸음을 물러나던 요괴가 조각조각나면서 단말마의 비명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말했잖아. 어차피 상대가 안 된다고.”
그의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30cm정도의 칼이 들려 있었다. 다음 순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앗! 당신 미쳤어!”
갑자기, 그가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산장주인에게로 다가가더니 경고도 없이 칼로 찔러 버린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산장주인이 그 칼을 가볍게 피하며 자신의 아들을 방패로 쓰는 것이 아닌가! 칼을 맞은 아이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더니 요괴와 마찬가지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아비규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으아아아! 사람을 죽였어! 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는 나를 누군가 잡아 세웠다. 그였다.
“이런…… 이 친구야 똑바로 보라고! 봐, 저기! 이 꼬마는 사람이 아니야, 나찰이라는 유계의 쓰레기지. 내가 말했었잖아. 여긴 요염 된 장소라고. 놈들은 당신을 제물로 바쳐서 유계에 있는 더 나찰들을 소환하려는 속셈이야. 알아?”
그 순간, 산장주인의 입에서 음산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큭큭, 역시 도계감찰이라 이건가. 내가 너무나 얕봤군 그래. 나의 정체를 이 정도로 쉽게 간파하다니, 운사에 대한 소문이 헛것은 아니었군.”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산장 주인은 더 이상 40대 후반의 인자한 아저씨가 아니었다. 60? 70? 갑자기 팍삭 늙어 버린 얼굴에 머리엔 이상한 모양의 붉은 관을 쓰고 있었고, 한 손에는 녹슨 구리종이 쥐고, 다른 손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그려진 부적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네놈에게서 나는 구린내가 워낙 독해야 말이지. 굳이 애써서 찾아 나설 필요도 없었다니까. 그저 악취가 진동하는 곳을 찾다보니 이곳이더군.”
그가 뒷짐을 지더니 장난스런 말투로 산장주인을 놀렸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10대 소년처럼 보였다.
“뭐야! 이런 건방진!”
산장주인은 노기를 띤 목소리로 반박하려 하자, 그가 손을 들어 말을 잘랐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천둥소리 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갈(喝)! 청학(靑鶴), 이놈! 네놈은 금기를 어기고 나찰을 불러 들여서 많은 인명을 해쳤으니 용서할 수가 없다. 자! 금제(禁制)를 순순히 받을 테냐? 아니면…….”
그가 요괴들을 쓰러뜨렸던 칼을 앞으로 겨누며 한 걸음 내딛었다.
“킬킬킬, 그 놈 참 방자하기 이를 데 없구나. 날 너무 얕보지 마. 아직 내겐 숨겨둔 카드가 남았으니까. 여율령 급령……."
산장주인의 입에서 뜻을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이 흘러 나왔다.
“음?”
주문이 끝나는 찰나, 그가 서 있던 곳의 뒷벽이 무너지면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엄청난 힘으로 그의 목을 조르며 들어 올렸다. 나는 그를 기습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손의 주인은 바로 현지였다.
“현지야!”
“큭! 가까이 가지 마!”
그가 고통스러운지 칼을 떨어뜨렸다.
“이……이건 괴뢰술(怪儡術)이라는 술법이야. 흔한 최면과는 차원이 달라. 이 여자는 지금 영혼이 없는 인형이나 다름없다고! 알아? 당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거야. 그러니까 어서 물러서! 컥, 컥! 청……청학 이놈! 이 금지된 사술을 사람에게 쓰다니, 정말 너라는 놈은 천벌을 받을 거다……."
괴뢰술이라는 것에 걸려서 영혼이 없는 인형처럼 되었다고? 그래서 나를 알아볼 수가 없다고? 도대체 무슨 개소리란 말이야! 현지가 그저 산장주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의 소중한 현지가 그런 괴물이 되었단 말인가!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나를 옭아매던 두려움을 밀어냈다. 오로지 남은 것은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강렬한 살의뿐이다.
“감히 네가 현지를…… 용서할 수가 없어! 으아아아!”
산장주인을 죽이고 싶다는 살의가 내 몸을 움직인다. 나는 고함을 지르며 바닥에 떨어진 그의 칼을 주워들어 산장주인 아니,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산장주인을 향한 적개심과 분노에 몸을 맡겼다. 혼신의 힘을 다해 두 손으로 거머쥔 칼을 산장주인의 정수리에 내리꽂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칼을 휘두른 것은 나였지만 격렬한 통증을 느끼고 뒤로 나가떨어진 것도 나였다. 산장주인이 혼신을 다한 내 일격을 너무도 쉽게 피하고는 나를 걷어찬 것이다. 나는 바닥을 구르면서도 끝까지 칼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함을 내지르며 그에게 몸을 날렸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숨통을 끊어주리라. 그러나 불가항력이었다. 산장주인의 강한 주먹을 턱을 얻어맞고 힘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산장주인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나를 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큭큭큭, 어리석은 놈! 주제를 알아라. 어차피 네놈은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곧 저승구경을 시켜줄 생각이야. 그러니까 쓸데없이 나서지 말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려. 아니면 네놈부터 없애버릴 수도 있어!”
산장주인이 엄포를 놨지만 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는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닥쳐! 현지를, 현지를 본래 모습으로 돌려 놔!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널 죽여 버리고 말겠어! 반드시! 내 손으로 너를…….”
나의 말에 산장주인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것참 기대가 되는군. 네깟 놈이 날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냐? 크하하핫! 정말 가소롭구나! 도계감찰의 수장인 운사도 지금 이렇게 내 손에 잡혀있는데 너 같은 아무 힘도 없는 쓰레기가 나를? 정녕 그리도 서둘러 죽고 싶더냐?”
그때, 현지의 손에 붙들린 '그'가 힘겨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이봐, 지금 당신 애인은 괴뢰술이란 술법에 걸려있어. 그건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다름없다고! 평생 저 자식의 꼭두각시로 살게 놔둘 건가? 커헉! 어서 그 칼로 이 여자를 찔러…… 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린 둘 다 죽어!”
“오호, 그런 방법이 있겠군. 클클클.”
그가 나보고 현지를 찌르라고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산다고. 하지만 내가 어떻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건가! 내 손으로 현지를 죽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 악마 같은 작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무엇이 옳은 걸까! 악마가 고민하는 나를 보며 비웃었다.
“큭큭, 그러면 네 애인이 죽는다. 과연, 네가 할 수 있을까?”
“현지가 죽는다고…….”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바보야, 아니면 우린 다 죽어! 그깟 칼 한 번 찔렀다고 죽는 건 아니야! 뭐해! 망설일 시간이 없어!”
“애인을 잃고 싶나? 그렇다면 이놈이 시키는 대로 그녀를 찔러라. 어디 한번 해봐! 무엇을 망설이나? 크핫핫핫!”
“칼로 찔러! 늦기 전에, 어서!”
난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도저히…… 도저히 내 손으로 그녀를…… 이건 악몽이다. 아주 지독한 악몽!
“그만! 그만해! 으흐흑”
“포기해라, 운사! 어차피 이놈은 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녀석이야.”
산장주인이 음흉한 미소를 띠우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용도가 궁금했던 금속제 지팡이로 그의 허벅지를 힘껏 찔렀다. 그러자 붉은 핏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산장주인의 지팡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 그의 피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클클클, 아주 잘됐군. 너 같은 능력자를 제물로 쓰면 좀 더 강한 놈을 부를 수가 있으니까. 정말 오늘은 운이 좋아. 눈엣가시 같던 운사도 잡고, 나의 소환의식에 필요한 제물들도 구했으니 말이야.”
산장주인은 태연하게 내게 등을 보이면서 지팡이로 빨아들인 그의 피로 바닥에 이상한 도형을 그리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어서!”
그가 다시 한 번 다그쳤지만,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꿈이라면…… 주문을 마친 산장주인이 다시 돌아와 지팡이로 그의 심장을 겨누었다. 지팡이는 불빛에 반사되어 요사스런 붉은 기운을 내뿜었다.
“클클클. 드디어 작별할 시간이 왔다, 운사.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넌 모를 거다. 잘 가라, 운사!”
산장주인의 지팡이가 그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천천히 머리위로 들려졌다. 나는 차마 끝까지 볼 용기가 없어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몸이 움직였다. 마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힘에 이끌린 것처럼 나는 칼을 거머쥔 채 산장주인을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아!”
“뭐, 뭐야!”
나는 어깨로 산장주인을 들이받았다. 산장주인은 나의 예상치 못한 기습에 지팡이를 놓치고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산장주인을 올라타기가 무섭게 목에 칼을 겨누었다.
“현지를 원래대로 돌려놔! 어서! 안 그러면 네놈을 죽이겠어!”
나의 협박이 통하지 않는지, 산장주인이 가소롭다는 웃음을 흘렸다.
“최후의 발악인가? 벌레의 꿈틀거림 치고는 제법이군 그래.”
그렇게 외친 산장주인이 살점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앙상한 팔로 내 목을 죄더니 나를 옆으로 던져 버렸다. 나는 엄청난 괴력에 제대로 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공중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떨어질 때 받은 충격으로 다리가 부러졌는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산장주인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버러지 같은 놈! 꽤 용을 썼다만 여기까지다!”
산장주인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움켜쥐려는 찰나,
“그건 내가 할 소리! 타합!”
기합성과 함께 폭풍 같은 기운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하더니, 목을 죄고 있던 현지의 손이 느슨해졌다. 그가 빈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비틀어 빠져 나오면서 산장주인에게 강한 차기를 작렬시켰다.
그의 공격을 받은 산장주인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다시 한 번 그가 달려들며 악마의 턱에 강한 주먹을 꽂았다.
“헉! 아직도 힘이 남아있었나.”
“네놈이 시간을 끄는 동안, 기력을 모았지.”
그의 발이 맹렬한 속도로 산장주인의 다리를 찍어버리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져 버렸다. 산장주인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자신이 그려놓은 도형 위로 넘어졌다.
“내가 주문을 완성시켜 주겠어!”
그가 중지를 물어 피를 내더니 도형위로 뿌리면서 주문 같은 것을 빠르게 외었다.
“아니, 그것은 환원주!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산장주인이 기겁하며 그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이상한 기류가 도형의 중심에서 흘러나와 산장주인을 휘감았다.
“으아아!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산장주인이 발악을 하며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점점 도형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작스런 반전에 놀라 허우적거리며 뒷걸음을 치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여기가 어디지…… 여기가…….”
“현지야!”
현지였다. 산장주인이 이상한 기류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현지의 정신이 돌아 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현지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기쁨을 느낄 틈도 없이 그가 우릴 바깥으로 밀쳐 내며 소리쳤다.
“뭣들 해! 진법(陣法)에 휘말리고 싶어, 어서 나가!”
그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산장을 나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
산장주인, 아니 그것은 악마의 목소리였다.
“아악! 오빠!”
긴 촉수 같은 것이 뻗어 나와서 현지를 도형 안으로 끌고 갔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로서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현지야! 안 돼!”
뒤늦게 정신 차린 내가 그 뒤를 쫓아가자, 그가 막았다.
“멈춰!”
“저리 비켜! 현지를 구해야 돼! 나 혼자 갈 수는 없어! 저리 비키란 말이야!”
나는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대로 현지를 잃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되찾아야 한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하지만 그가 완강히 버티고 서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미쳤어! 당신까지 빨려 들어간다고!”
“이 새끼야, 비키라고 하잖아! 나는 현지를…….”
그가 내 몸 어딘가를 찌르자,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기이한 도형의 중심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그가 나를 어깨에 들쳐 메고 뛰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현지야!”
화이트 아웃 현상.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본적이 있다. 남극에 가면 볼 수 있다는 화이트 아웃 현상, 모든 것이 하얀빛의 바다에 삼켜지는 그 현상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무한정 뻗어 나오는 빛의 해일이 악마와 현지, 그리고 산장마저 삼켜버리고 주변의 숲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빛 속에서 현지의 환상이 보였다.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현지야!”
그녀의 편지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산장은 절반이 날아가 버려서 겨우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도 어느새 그쳐 있었고, 서서히 날이 밝아 왔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처럼 너무나 평온하고 고요했다.
하지만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현지! 현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지의 이름을 부르며 숲을 헤맸지만, 나의 부름에 대답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매다가 지쳐버린 나머지, 다시 산장이 있던 자리로 돌아와 그대로 주저 않았다.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잊는 게 좋아, 누구에게 말한다고 해도 믿어 주지도 않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내가 경고했었잖아. 내 경고를 무시한 건 당신이야. 선택을 한 것도, 그 선택의 결과도 결국 당신의 몫이야.”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현지는…… 현지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유계(幽界)라는 곳이야. 흔히 말하는 저승과 이승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곳이랄까? 그 여자는 유계(幽界)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에 내 힘으로도 어쩔 수가 없어. 어찌되었건 일이 이렇게 되어서 정말 유감이야. 이건 진심이야. 참, 나는 운사라고 해. 이런 세상의 경계를 지키는 도계감찰이지. 나는 이만 가봐야겠어. 그럼 인연이 닿으면 또 보자고. 왠지 당신과는 다시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점점 밝아오는 여명 속으로 그가 사라졌다.
“크흐흑! 현지야!”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 동아리 회장과 후배들은 타고 가던 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MT를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왔다고 한다. 휴대폰이 드물었던 시절이었기에 내게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고 날씨가 나빴기 때문에 알아서 산행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만일 그때 버스가 고장이 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들도 나와 같은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희생이 줄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로 나는 몇 년 동안은 현지를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그녀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로 그가 말한 것처럼 유계의 저편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에겐 불가항력의 일이다. 결국 나는 현지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그렇게 그때의 기억들을 한동안 잊고 살아 왔었다. 아니 현지를 잊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인사동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그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다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20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놀랍게도 그는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돌아가서 그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내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바로 어제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결코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그를 부른 이유도 바로 편지 때문이었다.
침묵을 깨고 그가 물었다.
“그 편지 볼 수 있습니까?”
나는 서랍 속에서 며칠 전 도착한 문제의 편지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여기…….”
편지를 읽은 그가 봉투까지 살피더니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제가 한번 그곳에 가 보죠. 당신에게 진 빚을 감는 셈치고. 다녀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그가 나가면서 편지를 떨어뜨렸다. 사진 한 장과 함께.
나는 조용히 사진과 편지를 주워들었다.
사진 속에는 산장주인과 현지가 다정한 부녀지간처럼 손을 맞잡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10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사진에서 편지로 옮겨졌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과거로부터의 편지로…….
오빠, 보고 싶어요,
겨울에 산장으로 놀러 오세요, 알았죠?
설경이 너무 멋지거든요.
산장 아저씨도 오빠가 보고 싶대요.
꼭 오세요.
- 현지가 -
주석 및 해설
괴뢰술(傀儡術):
괴뢰란 꼭두각시의 한자어로 살아있는 사람의 자아를 인위적으로 지배하여 말 그대로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사술을 말한다. 실제로 고대 중국에는 침술로 사람의 감정과 의식을 마비시켜서 사욕을 챙겼다는 침술사의 일화가 전해진다고 한다. 소설 상에 등장하는 괴뢰술은 여기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가공의 술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