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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Sep 10. 2018

다온이 읽은 책 / 박완서의 말

박완서의 말 - 박완서 / 마음산책 : 네이버 블로그                                                                                                                                                                                                                                                                                                                                                                                                                                                                                                                                                                                                                                                                          

홍보 알림이 오자마자 동네 책방에 주문을 넣어서 받았다. 내가 비록 박완서 작가님에 대해서 잘 모르긴해도. 그녀의 글을 읽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강하게 들었다. 

표지의 편안한 모습, 흔한 하얀색 선풍기와 그릇에 놓여진 간식. 그리고 편하게 입은 옷. 주름이 보이는 손. 쇼파 위가 아닌 쇼파 앞의 그녀가 생각하기로 편하리라 여겨지는 장소에 그저 무심히 앉아서 다리를 끌어안고 웃음을 짓는 듯 아니,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이 그냥 좋다. 하지만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라는 가제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굳이 개인주의자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게 너무 딱딱해보여 소박하다고 덧붙인 걸까? 뭔가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살짝 이해도 갔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냥 소박한 개인주의자라고말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것이지. 작가님은 자신을 '--주의'라고 말하길 원치 않으셨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쉬움은 조금 접어 두고, 작가님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들을 모아 둔 것이라 드문드문 여자로써의 그녀의 말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도 보이곤했다. 모르긴 몰라도, 박완서작가님의 글들에는, 그리고 그녀의 말들에는 어떤 페미니스트에 대한 책들보다도, 강한 어조로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글 속에서 이미 용어로 정의 내리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뭔가가 있지 않나싶다.





여성이란 아무리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잘 살게 돼도 남성에 비하여 민중의 자리에 서 있고, 아무리 사랑받는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 사랑이 동등한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닌 것을 볼 때, 여성 문제를 소설화한다는 건 우리 시대 모든 작가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시작으로(아마도?) 무수히 많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비단 오늘날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비록 요즘이 더 화제가 되고 있고, 미투 운동들이나 여자들의 시위들은 이미 곯고 곯아서 터져 나온 것이 한 몫 하지 않았나싶다. 

언젠가 어릴 때 이런 생각들을 한 적도 있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좋을까?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좋을까?
그 어린 순간에는, 그래도 막내였고 예쁨을 많이 받았었기에 그래도 역시 여자로 태어나는 게 좋겠다며 철없는 결론을 내렸는데.
지금은? 지금도 여전히 나는 성과 약자로 여겨지는 사회일지라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난 왜 하게 되었을까? 무엇때문에 여자와 남자의 다른 점과 대우받는 것 조차도 다름을 인식하게 되었을까?
왜 이런 것을 입밖으로 내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했을까? 




여자도 그런 기본적인 인간 대우를 받아야하고 처벌을 받지 않아야한다 이거지 어떤 굉장한 이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가 싫은 거죠. 남자가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고, 여자가 남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어요.




무조건 여자를 옹호하지도, 여자의 입장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난 이렇게 글로나마 생각을 전해 듣지만, 직접 육성으로 듣는다면 그걸 듣는 이의 생각은 또 어땠을까? 거의 모든 대화의 상대는 남자였고, 지금은 유명한 교수로 명예롭게 살고 있는데 나만 그들의 대답들이 그렇게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는건 예민함때문일까. 

박완서 작가님이 이렇게 페미니스트적인 말들만을 한 것은 아니니 또 얼마나 다행인지. 문학,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도 편하게 나눠 주시고, 글쓰는 많은 방법들을 떠나서 그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반갑고 기쁘다. 





사람은 서로 매여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또 그 반대로 자기가 굉장히 증오하던 사람이 없어졌을 때도 허전하고 그렇죠. 인간이란 게 그렇게 복잡한 거고. 그러니까 인간에게만 문학이 있는 거 아니예요? 다른 동물에게는 이중성, 삼중성이 없으니까.





바르게 말하기, 그런 기초는 글 쓴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아요.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는 게 참 힘들어요. 소설이란 여러 사람하고 같이 공감하면서 쉽게 마음에 와 닿도록,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거예요. (...) 내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면 소설을 결코 쓰지 않겠죠. 그것이 안 되니까 소설로 쓰는 거니까.




마지막의 만남, 피천득 선생님과의 대화는 그 어느 순간들보다도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지던지 !!

소소하게 웃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참 좋더라.






인생이란 어느 나이고 다 살만한 거얘요. 나는 한 발도 이미 무덤에 들어가있는 사람인데 내 인생에 대해 지금도 만족하고 있어요. 남아 있는 나날을 여태껏 살았듯이 죄 짓지 않고 좋은 사람 자주 만나면서 살면 그뿐이죠. 난 내일 죽는다해도 오늘 웃을 수 있어요. 부재 속에서도 나의 글은 다른 이들의 생각 속에 존재하게 되겠지요.-피천득 시인님의 말






사실, <박완서의 말>을 다 읽고, 블로그에 글을 남겨야지 하면서도 너무 막막했다. 내가 뭐라고 내 생각을 더하기가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고 괜히 책의 내용을 어지럽히는 거 아닌가해서. 그래서 더 늦어진 책이야기였다. 

그래도 역시 적고 나니 또 읽었던 순간의 생가들도 나고 조금 더 애정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작가들의 말 시리즈는 수전 손택을 비롯해서, 찬찬히 다 읽어보고 싶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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