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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Apr 27. 202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김초엽 / 한국 sf소설

이제서야 만났다. 꽤 오래 사람들의 극찬을 받아왔지만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은 수많은 책에 밀리고 밀려버렸다는 핑계를 만들어낼 뿐이다. 


sf 소설은 개인적으로 잘 읽어오지 않았었지만, 조금씩 그 편견의 틀을 깨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고, 단편 중의 하나 제목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오래된 우주로 가는 정거장의 한 노부인을 이야기하는 단편이다. 자신의 삶을 연구에 모두 던지다시피 하고, 먼저 다른 별로 보낸 가족을 찾아 떠나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냉동 수면 기계를 이용해 다시 살아내며 삶을 연장시켜 왔다. 하지만 기약 없이, 여전히 갈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세월은 지나고 지나서 이미 그녀의 가족들은 이 세상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오래된 우주선을 타고, 성공할 리 없는 것을 알면서도 우주로 나간다. 


"언젠가는 슬렌포니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지. 언젠가는 이곳에서 우주선이 출항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슬렌포니아 근처의 웜홀 통로가 열리지 않을까...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 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77p 중에서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3p 중에서


우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빛의 속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시대. 그 시대에서도 더 유용한 것만을 찾는 그들,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그녀다. 그녀의 깜깜한 우주로 향한 시선을 따라 나도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그곳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겠지. 하지만 외로움의 총합이 늘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그 시절을 또 바라보게 되겠지.


이 책의 내용은 미래의 시절을 사는 이들에게, 더 편리하고 지금의 문명을 대표하는 물건들이 생소한 것으로 변해가는 시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것은 사람들의 외로움. 감정이었다.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9p 중에서


우리가 심리적인 문제 없이, 적어도 없다고 믿을 수 있는 만큼의 날을 기다리는 것은 그날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생각을 해야 하는 것.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탐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해 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하며 닿기를 갈망할 것이다.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작가의 말 중에서.


완벽하리만큼 안정되었다고 믿어지는 세계에서조차 사람들은 또 다른 고독, 슬픔, 외로움을 향해 있는 자신의 심연을 마주한다. 또 그 외롭고 고독함을 인지한 이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이, 미래에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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