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동화가 어떤 의미일지, 이전과 지금의 모습에 이른 것까지 바라보며 가만히 언니의 눈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어요. 언니가 노든이 되어, 조그만 존재들인 아이들이 수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해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헤엄칠 때까지 잘 보듬어줄 모습이 그려지면서 말이에요.
저는 유독 하루 이틀 전부터 내내 아이의 얼굴을 더 들여다보고 있어요. 폰에서 울리는 알람을 따라 클릭해 들어가다 보면 아이의 1년 전, 2년 전의 사진들이 뜨곤 해요. 어찌나 작고, 어찌나 해맑게 웃는 모습인지. 그 아이의 모습에 저의 어린 엄마였던 모습이 겹쳐 보이곤 해요. 어느 날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겨우 펴고 밖으로 나섰더니 낙엽이 잔뜩 떨어져 있었어요. 아이와 저는 감탄했죠. 그리고 저는 낙엽 쌓인 길과 나무가 배경이 되어 아이의 뒷모습을 이리저리 담느라 바빴어요. 잠시 떨어져 멀리서 카메라 앵글에 담으려고 보니 아이는 자전거에서 내려와 가만히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푸른 잎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하늘을 보기 힘들게 가리고 있던 나무의 사이사이가 비어진 것을 보고 있었어요. 이 멋진 풍경은 마치 그림처럼, (이 모습은 사진과 두 눈으로 담은 제 기억 속에 올해 가을의 가장 잊을 수 없는 모습으로 남았어요.) 그리고 이내 쌓인 낙엽 위를 몸을 숙이고 계속 걷더라고요. 낙엽 소리를 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나오면서 제 카메라에도 움직이는 모습을 담았어요. 언젠가 한 여름에 풀벌레 소리를 아이와 길을 걸을 때 제가 녹음을 했었거든요. 그때가 기억이 났나봐요. 아이의 웃는 모습, 자전거 타는 모습, 멀리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아가가 언제 이만큼이나 자라 이렇게 제 곁에서 조금 더 벗어나게 되는 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래서 요즘은 계속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봐요. 볼살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제법 아가티를 벗고 볼살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언제쯤 커서 엄마의 도움을 덜 필요로 하게 될까 생각하며 그날이 얼른 오길 바라왔어요. 생각보다 금방 와서 올해 계속 놀라고 있답니다. 여름에는 함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서 몰랐는데, 한 여름이 지나가고 조금 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아이가 먼저 카디건을 찾기도 하고 스카프를 해서 보내면 봄까지만 해도 하교 때는 꼭 책가방에 들어있기 마련이었는데 이제는 알아서 목에 두르고 나오기도 하더군요.
사실 전 여름이 지나가면서 느껴지는 가을이 시작될 때의 공기를 무척이나 좋아해요. 겨우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온갖 습기 머금은 공기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의 모습이 훌쩍 더 자란 것을 바라보게 되니 조금 더 다르게 가을의 첫 공기가 느껴지네요. 시원한데 빨리 보내고 싶지 않은 계절을 만난 것처럼 말이에요. (사실 가을이 올 때마다 그다음 계절인 겨울을 더 간절히 기다리곤 했답니다.) 올해는 조금만 더디 흘러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아름다운 가을빛에 물든 아홉 살 소녀의 딸을 잡아두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가을은 왜 이리 서둘러서 인사를 나누고 다정한 안부를 묻기도 전에 겨울에게 계절을 넘겨주고 가려는 걸까요. 딸은 추워지기가 무섭게 얼른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가을의 색깔이 예쁘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녹음을 하고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을 바라보고 서서는 천천히 떨어져라고 말하더니 말이에요. 가을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벌써 가을은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저 멀리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유난히 다른 계절에 비해 기억할 것이라고는 손에 조심스럽게 쥔 낙엽뿐이었는데 이제는 아이가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를 녹음하고, 높이 올려다보며 나뭇잎의 색깔에 취해 있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흘려보낸 시간보다 조금 더 나으려나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다시 계절을 통과하면서 똑같이 아프기도 하고 다시 나아질 계절이 온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여전히 비록 계속 힘들어진다고 해도 또 희망에의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며 지내고 싶어요.
언니의 가을은 안녕하였나요?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할 마음을 벌써 먹으셨나요?
- 11월 13일 연달
바람이 닫힌 창문 틈으로도 어떻게든 들어와
몸을 오소소 떨게 되는 밤에
-> 11월 27일 스며드는 달빛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