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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Nov 09. 2019

사실, 나는 내 목소리가 싫어.

처음 하는 이야기. - 페르소나

사실은,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전혀 뜻밖의 이야기라고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겠지만 사실인걸.


나는 나의 목소리와, 가끔 흥분하면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표현되는 단어들의 나열과 화끈 달아오르는 나의 표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에서 항상 벗어나고 싶어져.


아직도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누구보다도 (지금도 여전히) 키가 작은 나는, 끝말잇기를 나와서 할 사람을 뽑을 때도 손을 들고 당당히 나갔었다. 내 기억 속에도 어렴풋한 건 내가 말하면 선생님이 다시 또렷이 말해주곤 하였다는 것. 그렇지만 그것도 훨씬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었지, 내가 그 당시에 알지는 못했고 그저 밝은 아이였을 뿐이다.


내 발음 때문에 혀 짧은 소리가 나는 것 같다는 말도 들었었고.

처음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을 땐 부득이하게 전하를 내내 해야 했던 업무여서 전화를 붙들고 하루 20명 이상의 인사담당자들과 인사를 하여야 했는데 처음엔 고향이 어디냐며 묻는 분들도 있었다는 걸. 


아득한 기억처럼 되살려보는 건 여전히 즐겁지가 않다.


그 부끄러움을 모두 감내하고 어떻게든 버텨내려 했었고 결국은 버텨내는 것도 가능했는데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어려 보이고 어리숙해 보이고, 발음도 사투리를 사용했으니 서울 여자들이 많은 회사 내에서의 텃세는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봄날의 찬 서리 같은 것이었다. 제일 돌아가기 싫었던 순간들.


지금도 얼굴이 새빨개지게 달아오르게 하는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

그래서 어디서든 오히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활발하게 나섰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전화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목소리가 어리고 앳된 것 같다는 말을 듣는 것도 싫어서, 차라리 애써 전화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내가 독서모임을 여러 개 진행하고, 독서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뜻하지 않게 고유 글방에서는 심지어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서 읽었다.

세상에나...!


나의 눈을 바라볼 때 내 머릿속이 하얘지는 걸 느꼈을까?


침을 여러 번 삼키고, 천천히 말하기도 하였다가 웃으면서 최대한 잘 말하려 노력해보면서 애써보지.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


그래서 어쩌면 내가, 진짜로 책 속으로 숨게 되는 것, 침참하게 되는 걸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린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여긴 안전해서.


그만 숨으라고 할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을 왜 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나는 당분간은 조금 더 자주 숨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나의 가면조차 진정한 나 자신인 모습으로 드러나겠지.






우리가 숨기고 싶은 모든 불쾌한 감정은 내면의 그림자로 가라앉는다. 에고와 그림자의 관계는, 마치 빛과 그림자의 관계와 닮아서, 에고가 뛰어난 연기를 펼칠 때마다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어두워진다. 쾌활한 척 행동할 때마다 '아,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후회의 그림자가 쌓인다. 

(...) 가면을 벗어야만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면조차 나다운 사람이고 싶다. 모자란 인격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면조차 아름다운 사람, 가면조차 진정한 나 자신인 삶을 살고 싶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중에서 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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