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질투하는 윤여정 선생님께

by 임우유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질투



제가 질투하는

윤여정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 글을 보실 리는 없겠지만 그냥 이렇게 쓰고 싶어서 씁니다. 선생님께 느끼는 저의 질투에 대해 말하려면 편지처럼 써야 할 것 같아서요.


 두 손 두 발 다 셈에 동원해도 세기 어려운 수상 소식들에 선생님의 연기를 종종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수상 소식하니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최근 영국의 아카데미로 알려진 BAFTA에서 선생님께서 남기신 수상 소감 말이에요.


 “이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상은 의미가 있지만, 특별히 이 상은, 콧대 높기로 유우명한 영국 분들이 저를 좋은 배우라고 인정해주신 거라 더 고맙고 좋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Thank you so much for this award. Every award is meaningful, but this one, especially being recognized by British people, known as snobbish people and they approve me as a good actor, I am very happy. Thank you so much)”


 소감을 마치고 나서 화면이 전환되었을 때 허리를 굽혀 가며 웃던 시상자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미나리를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그간 선생님의 명연기를 봐 왔기에 수상 소식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상을 받을 만한 배우가, 드디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질 기회를 얻은 것이 다행스러웠다고 해야 맞을 거예요. 그날의 소름에 큰 지분을 차지했던 것은 선생님의 수상 소감이었습니다.

 저 순간에, 아차차 나 후보 아니고 수상자네, 하는 그 경황 없는 와중에서도 필립 공에 대한 애도를 전하고, 또 그 바로 다음에는 고상한 척하는 영국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다 기쁘다고 하시다니요. 너무나 진부한 표현입니다만 그야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 갑작스레 고백하건대 저는 제가 가끔 무섭습니다. 어떤 것의 좋고 싫음을 눈 깜짝할 새 결단해버리는 제 추진력 넘치는 사고가요. 말 몇 마디만 해도 싫어지는 사람이 생기는 게 두렵고, 싫어할 것 같은 메뉴는 도저히 시킬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제가 좀 쫌생이 같아요. 삼십 년 좀 넘게 살았어도 이 정도가 되는데- 사십 대와 오십 대는 얼마나 더 제 취향과 편견을 꽁꽁 싸맨 채 늙어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딘가 남루한 옷을 껴입고 추위를 맞이하는 것처럼 초라한 기분이 들어요.


 선생님께서는 올해 일흔다섯이시지요. 1947년생이신 선생님의 압도적 유연함에 저는 맥없이 질투를 느끼고 맙니다. 그런 유연함은 비단 올해에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지요.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돋보였던 선생님의 매력일 거예요. 패셔너블하다는 칭찬에 젊은 애들 옷 이쁜 거 입고 있으면 얘 너 그거 어디서 샀니, 해서 따라 사서 그렇다고 하셨던 대답도 그랬고, 꽃보다 누나에서 예순일곱 살이 처음이야, 하셨을 때도 그랬어요. 선생님 하자고 하시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이 땅의 제작 현장에 있다가는 괴물이 될 것 같아서, 안주하기 싫어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떠나셨을 때의 그 용기도요. 그런 용기가 있어서, 미나리의 영광이 최근에 선생님 곁을 맴도는 기회를 얻은 거겠지요.


 몇십 년이나 더 어린애가 선생님을 질투한다니 조금 이상하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대도 팔순을 앞둔 선생님은 너무도 샘이 나게 멋지시거든요. 모든 게 다 갖춰진 삶에서 일구어낸 삶이라 해도 그럴 텐데, 대중에게 노출된 사람으로서 굴곡진 인생의 그래프를 담담히 밟아가며 꿋꿋이 이뤄내신 삶이라서 더요. 제가 살아낸 시간의 곱절을 지나 보내며 맞닥뜨려야 했던 많은 선택의 기로들이 있었겠지요. 매번 옳다고 생각한 걸음이 아니었더라도 늘 성실하고 유연하게 걷다 보니 어느덧 뒤돌아본 발자국들이 그림 같아졌겠지요.


 연세가 꽤 많이 드신 분들을 집 안팎에서 만나며 어딘가 모르게 계속 힘에 부친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어른들을 결계처럼 휘감고 있는 그 공고한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많았고, 간혹 의견이라도 차이가 날라치면 바위를 깨려 덤비는 달걀 신세가 된 것 같아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음을 알면서도요. 저라도 별수 없어질 것임을 알면서도요. 선생님을 생각하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바위 앞에 덤비는 계란이 아니라, 암탉의 품에 안긴 계란이 된 것 같거든요. 알맞은 온도로 품어져 언젠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생기는 것 같고요.


 선생님과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서 다행입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더 바뀌는 시간만큼 천천히 나이 들어가며 부단히 선생님을 질투하다 보면 저도 언젠가는 선생님의 좋은 면을 두어 개쯤은 닮을 수 있겠지요. 이미 좀 그르게 살아와서 완전히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처럼 유연하고 위트 있게 나이 드는 법을 익힐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생각이 조금 굳어질 것 같을 때 한 번씩 몸을 뒤틀고, 꽉 막힐 것 같을 때 어딘가에 처박힌 돌멩이를 치워 내면서, 조금씩 정진해 볼게요. 선생님의 건강과 멋짐을 오래도록 응원하면서.




BAFTA 끝나고 썼던 글인데 업로드하는 지금은 아카데미 생중계 중.

그리고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