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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Nov 23. 2021

ISFP적 불행과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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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다행



ISFP

불행과 다행


 바야흐로 MBTI를 말하지 않고는 밀레니얼과 Z세대와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처음 MBTI라는 것이 조그만 유행처럼 등장했을 때 나도 나의 MBTI를 테스트해 본 적이 있었다. 결과는 늘 한결같았다. 너무나도 예측 가능하게도 나는 I형 인간이었고, 현실주의적이며, 감정적이고, 계획을 세우는 데엔 늘 허둥대는, 아니 계획을 세우지 않아 허둥댈 일조차 없는 편에 가까운 타입이었다.

 수많은 특징 중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 특징은 행복과 불행의 역치가 지극히 낮다는 것이었다. 좋게 해석하면 가성비 넘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고, 나쁜 면을 보자면 별것 아닌 바람에도 픽 픽 쓰러질 수 있다는 거겠지. 


 내 나이 스물일곱쯤은 그래서 괴롭고 끔찍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낸 나이였다. 취직 자체에 성공한 것은 몹시 다행인 일이었으나, 하게 될 일을 선택할 수 없는 조직 생활의 생리에 나가떨어져 원치 않는 직무를 하며 몸과 정신이 아주 퍼석하고 볼품없게 상해버렸다.

 아침이면 회사에 가기 싫어 울상을 하고선 기어 나오듯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가끔 커피를 같이 마시러 다니는 또래 사원들 몇을 제외하면 사무실에 도착해서 반가울 얼굴도 거의 없었다.

 업무 특성상 싫어하는 사람들을 아주 자주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인상조차 쓸 수 없었다. 기를 쓰고 분을 참아야 했던 일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현장’이라고 칭하는 곳들을 순회하듯 거치다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면 오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성과가 잘 나지 않았던 조직은 짊어져야 할 짐도 많았다. 안 되고 있는 일에는 왜 그 일이 되지 않고 있는지를 납득시켜야 했고, 그런 납득을 위한 자료를 만드는 데 시간을 쏟아야 했다. 경력 따위 합쳐봐야 1년도 채 되지 않는 내 머릿속에서 대단한 변명거리가 나오지 않을 것임을 윗사람들도 뻔히 알 텐데도 밤이 지나가도록 어떻게든 자리에 앉아 있어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있었다. 그런 일주일이 계속 반복됐다. 끝이라곤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단순히 한 번 불었다 마는 바람이 아니라 매일 매일을 해일 앞이었던 셈이다.


 이런 불행도 어른이 되면서 불가피하게 통과해야 하는 불운의 터널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와 어른이 된들 그건 무슨 의미가 있지, 뒤이어 그런 의문이 따라오곤 했다.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아파트의 얼마 안 되는 주차공간에 멀쩡히 차를 대기 위한 최소 귀가시간은 저녁 여덟 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은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로 귀가하기에도, 주차할 수 있는 시간대 안에 귀가하기에도 모두 실패한 날이었다. 아파트 동 앞에는 이중주차도 하기 힘들 정도로 차가 들어차 있어서, 억지로 차를 대려다가 공연히 사고를 내기 십상이라는 판단이 섰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아파트 상가 주차장으로 다시 차를 돌렸다. 굵은 빗줄기가 계속 차 루프를 때렸다. 분명히 루프가 비를 막아주고 있는데 그 짤막한 거리를 운전해 상가 주차장으로 넘어오는 사이 계속 빗줄기 밑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렵사리 들어선 주차장에 빈자리라도 없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정차한 차에서 가만히 핸들을 잡고 있었다. 그날의 힘든 기운을 다 차에다 토해놓고 가야 어기적거리면서라도 대문을 열 힘이 남을 것 같았다. 타블로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둔 채로,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임을 알려주는 DJ의 말에 오늘 몰려든 모든 불운들을 합리화하며 라디오 소리와 겹쳐 드는 거센 빗줄기 소리만 듣고 있었다. 다음 곡이 나올 차례였다.


 후두

 두

 두

 두둑.


 새까만 밤의 어둠을 뚫고 나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치는 빗줄기 그 사이로 쿵, 하는 피아노 소리가 내려앉았다.


 Say something, I’m giving up on you

 I’ll be the one, if you want me to

 Anywhere I would’ve followed you

 Say something, I’m giving up on you…….


 그날 처음 들은 노래*가, 늦은 밤 귀가하는 나를 실은 차에서, 차 루프를 미친 듯이 내리찍는 빗줄기 소리와 함께 들리던 그 순간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노래가 고조되기도 전에 울음이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시동이 켜져 있는 채로 핸들을 잡은 손에 머리를 박고 펑펑 울었다. 노래가 내 등을 두들겨주는 것 같아서. 너 힘들지? 많이 힘들지? 그래 그럼 울어. 지금 울고 눈물 닦고 집에 들어가, 하는 위로이자 나를 위해서만 쏟아지는 청각적 후원인 것만 같아서였다.


 아주 작은 일로도 행복하거나 불행해질 수 있는 사람과 큰일이 생겨야 행복과 불행에 가닿는 사람. 그 두 사람 중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지지리도 불행하다고 느꼈던 그 밤에, 낮은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한 소절의 노래가 그날의 모든 불행을 상쇄하기도 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겪는 건 내가 전자의 사람이라 가능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핸들을 쥐고 펑펑 울던 스물일곱 그 밤을 지나 몇 살 더 먹은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이따금 밀려드는 불행과 불운에 덜컥 주저앉아버린다. 무력함에 울컥할 때도 많지만 지금의 내가 되어서야 그때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앞으로도 대차게 눈물 쏟을 일이 수십 번은 더 생길 테지만, 넌 그 순간의 끝의 끝에서라도 어떻게든 너만의 위로와 다행을 찾아낼 거라고.




* 이 노래를 모르신다면 꼭 한 번쯤 들어보시기를 권하는, A Great Big World의 노래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https://youtu.be/-2U0Ivkn2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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