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2 - 우울증 극복기
세상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의외의 사실이 있다. 첫번째로 생각보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아주 많으며 두번째로 그들 중에는 굉장히 평범하고 아픔이 없을 것 같아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우울을 견디고 살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다지 고생을 안했을 것 같은 밝아보이는 사람도 알고보면 피폐한 삶 속에서 꿋꿋이 피어난 사람이었다. 물론 그들도 나와 같이 가면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속 깊은 내면까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한번 쯤은 어두운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던 것은 동질감이라기보단 안심에 가까웠다. 그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고, 내가 하는 생각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며,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성장통이라는 것.
나는 이제 우울했던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지독한 고독 속에서 울어보기도 하고 스스로 발버둥치며 일어나기도 한다. 가끔 누군가의 손을 빌려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하염없이 잠만 자기도 한다. 우울함이 나를 잠식해도 그런 나를 깨우치는 방법을 알아갔다. 세상은 나에게 쉴 새 없이 우울할 구석을 줬지만 나는 마냥 그 구석에 박혀있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깨우친 것이었다. 절대로 웅크려 있지 말 것. 무엇이든 습관을 만들 것. 뭔가 하나라도 해내는 순간 비록 하루가 매우 짧아지더라도 비로소 나의 아침은 시작된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에 대한 고찰을 했던 때에의 나는 어찌보면 세상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왜 신은 사람을 만들었으며, 그들의 행복도는 이리도 다른가. 신이 인간을 공평하게 만들었다면 나는 왜 이리도 모자른 사람인가. 나는 신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받은 인간일까. 신이 나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애초에 내가 태어난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순리일 뿐.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게 해결하세요?"
요새 나는 이 질문을 참 많이 한다. 그 중 운동으로 푼다는 사람들은 멋있다고 칭찬하며 실제로 존경하기도 한다. 노래를 부른다거나, 맛있는걸 먹는다거나, 잠을 잔다거나 등등. 사람들의 해결법은 각기 다르고 다양하지만 나는 이 중에 굳이 '좋은 방법'과 '그렇지 않은 방법'을 나누지 않기로 했다. 도의적으로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 방법이 무엇이든간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행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거니까. 사람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번아웃이 오고, 우울감을 느낀다.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냐보다는 '어떻게든' 이겨냈다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래, 결국은 본인 스스로의 의지니까.
오늘도 나는 우울의 터널을 건넌다. 이 터널이 끝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지.
여전히 나는 우울하다.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