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이어진 두 남녀의 러브레터
2022/10/15(토) 14:00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B블록 1열
100분(인터미션 없음)
56,100원(문화릴레이할인)
멜리사 배종옥
앤디 장현성
별이 다섯 개!
예당 앞 단풍이 꽤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미국의 극작가 A.R. 거니의 대표작 <러브레터>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앤디와 편지 쓰는 것을 끔찍해하는 멜리사가 등장한다.
10대부터 50대까지 47년간, 일수로는 17155일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번갈아 읽는 형식의 2인극이다. 100분 동안 인터미션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총 333통의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책이 내게 주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무궁무진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또는 연출이 표현한 무대가 정답이 되어 버리는데, 책을 읽을 때는 그런 제한이 없다.
이 작품은 딱 그런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느낌이다.
엄청 재밌는 책을 누군가 읽어주는 느낌이다.
나름 미국에 오래 살았기에, 그들이 지냈다던 지역과 이동 경로, 학교 다닐 때와 집안의 풍경 등이 더 상상이 돼서 그랬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며 엄청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또 한글을 들으면 영어가 대충 예상될 만큼 어색한 번역체였는데, 이 작품엔 그런 문체가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나는 되려 너무 좋았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생기는 상대에 대한 선입견(?) 이미지(?)의 위험을 잘 아는 펜팔 세대인 나는 뭔가 멜리사에 공감이 됐지만, 앤디의 한방도 참 묵직했다.
대본의 첫 지문인 것 같은 안내가 극장 안내방송 후에 흘러나온다.
극이 어떻게 흘러갈 것이고 배우들이 어떻게 할 것이며, 관객이 극에 몰입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주 적절한 지문.
라디오에서 사연을 읽어주듯
멜리사와 앤디는 객석을 바라보며
책상에 가득 놓인 편지를 읽어가는데,
눈으로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 다리로
펜으로
책상 위에 놓인 물 잔으로 (분명 물인데, alcoholic 표현..오짐)
끊어 읽음으로
목소리의 강약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달라지는 말투로
뒤로 쓱쓱 지나가는 동화책 삽화 같은 귀여운 그림으로
삶의 대소사와 희로애락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는 내용을 찾아보지 않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삶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
다음 편지가 기대되고 떨리고
너무 재밌고 좋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분의 연기에 푹 빠져서
탄식, 놀람의 감탄사가 중간중간에 터져 나오고
웃음꽃도 피고- 객석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연령층이 상당히 높았는데
관크 하나 없었을 정도로 완벽했다.
(핸드폰 2번 정도 떨굼은 양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