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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 May 01. 2023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3)

잘 생기면 다 오빠예요

공연 기록

2022/10/25(화) 19:30

샤롯데씨어터

B구역 1열

175분(인터미션 20분)

112,500원(토핑선예매할인)


다웃파이어/다니엘 양준모

미란다 박혜나

스튜어트 김다현

완다 김나윤

프랭크 임기홍

안드레 이경욱

리디아 설가은

크리스 윤준상

나탈리 조소은

미스터 졸리 원종환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1) 후기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2) 후기


무대 시작 전 영상에 쌓여가는 테트리스


왼쪽은 정갈하게 계획적으로 쌓여간다. 마지막 긴 거 넣어서 싹 없애버릴 것처럼. 그래서 강박증 있는 미란다가 플레이하는 화면 같았다. 

반면에 오른쪽은 대책 없이 그냥 떨어지는 거 아무 데나 넣기 급급한 모습에 꼭 다니엘이 조작하고 있는 것 같았달까.


그리고 미다파 무대에서 세트 뒤로 보이는 영상 배경도 중요한 포인트다. 법정 장면에서 레고로 지어진 집이 와르르 무너진다. 서로 다른 레고 부속품을 사용해 작품을 하나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성격을 가진 힐라드가(家)가 무너지는 모습이라 재판씬에 정말 잘 어울린다. 




분명 오늘도 1열이라 시야는 깨끗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던 건 자꾸만 차오르던 눈물때문일 것이다.


그간 잘 참아왔던 혜란다는 1차 법정 장면에서 눈물 못 참고 계속 주룩주룩,

나탈리가 "그럼 누구 잘못인데?"라고 물어보는 장면에서는 아이들에게 상처 줘서 미안한 아빠라 항상 눈물 흘리는 파파와 함께 울컥한 큰 딸,

이혼 판결 후 아빠랑 허그할 때 오늘은 아들도 막내도 눈물 닦닦...

동생을 너무 사랑하는 형과 그의 남편..


온 가족이 너무 사랑이 넘쳐서, '사랑이 있는 한 가족은 영원히 하나로 묶여 있다'라는 극의 메시지가 매 순간 전달되는 놀랍고도 감동적인 회차였다.


특히 부녀가 이를 악물고 눈물 참으며 불렀던 "Just Pretend"는 오늘따라 너무 와닿았다. 태희가 엄마 딸이라면 가은이는 아빠 딸 같다.


브로드웨이 버전의 리디아는 첫 넘버 "What's Wrong With This Picture"에서 현재 그림에서 뭐가 이상한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가족의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그런 딸이다.

그리고 Just Pretend에서 리디아는 자신은 이런 인생을 그리지 않았다는 아빠에게 새 그림을 그려서 걸어보자고 말한다. 커크패트릭의 언어유희와 복선은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다.


철든 큰 딸이라고는 하지만

화난 것보다 삐진 느낌이 가득한

그래도 엄빠의 사랑이 필요한 아직은 어린 15살의 감정이 너무 느껴지는 연기라서 가은이만이 디테일이 참 좋은 거 같다.


아빠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아빠를 쫓아낸 엄마에게 화내고,

아빠가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될까 봐 다웃파를 싫어하고,

아빠랑 엄마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자신도 사랑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엄마한테 거짓말해서 아빠를 더 이상 보지 못할까 불안해하는

참 사랑 많고 따뜻한 가은리디아다.





암튼 오늘은,

그동안 미다파의 후기를 여기저기서 읽으며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망설여지던 그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한다.


로컬라이징: 현지화. 언어를 번역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 관습과 더불어 현지의 법률까지 고려해 수정 및 개정하는 작업


로컬라이징. 문서 만드는 게 밥줄이라 이 작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매우 동감하는 바, 열려 있는 듯하나 닫혀 있는 한국 뮤지컬 세계에 이 작품을 준비할 때 번역가님과 음감님이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그것도 아주 직설적이고 노골적일 뿐만 아니라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말이 많고 빠른 커크패트릭 형제의 작품이니까. (참고로 <썸씽로튼>도 굉장히 한국 패치가 잘 되어 있다. 다웃파이어 브로드웨이 버전은 진짜 가족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썸씽로튼>의 브웨 버전 가사는 아주 조금 많이 센 편이다.)


근데 또 라임은 찰떡같이 맞아떨어지게 쓰는 대본가 가사가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라, 한국어로 옮기기에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원작의 말발과 욕설을 번역으로 온전히 전달하는 아주 어려운 이 작업인데, 작품이 가지고 있는 대사와 의미를 유지하면서 - 미국 문화색을 지우지 않으면서(예, 배달기사에게 음식값을 지불하고는 "잔돈은 됐어요"라고 말하는 부분) 한국 정서를 이따만큼 넣었다는 자체가 아주 박수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 불편한 점도 있다.


이제 초연이기에 다듬어질 수 있지만, <썸씽로튼>처럼 은은하게 내뱉는 어른조크와는 다르게 그냥 대놓고 질러버리는 다소 불편한 농담조의 대사가 거슬린다.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일부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Easy Peasy" 넘버 중 나오는 광고는, 브로드웨이 버전에선 만성 설사약이며 뒤에 읊어대는 부작용도 한국 버전보다 조금은 더 건전(?)한 듯하다. 만성 설사약도 뭐 깔끔하진 않지만- 일부 사람들이 듣기엔 지금 한국 버전에서 나오는 광고보단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온갖 유행하는 최신 밈을 때려 넣은 것도, 사실 좀 오글거린다. 다른 건 다 그래도 괜찮은데, 우영우는 ... 매번 흐린 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무 좋다. 사람이 이렇게 창의적일 수 있나 싶다. 

감탄 터지는 번역이 천지지만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What's Wrong With This Picture"

크리스 생일 파티에서 굉장히 힙한 아빠로 등장한다. C to the h to the r - i - s 이런 거 하는데, 한국에서 저걸 못하니, "아빠에게 카톡해"라는 굉장히 한국적인 가사로 탈바꿈했다. 



"Make me a woman"

Grace Kelly, MaDonna Summer, 엘리너 루스벨트, 줄리아 차일드, 마거릿 대처, 자넷 레노, 오스카 와일드 등등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을 오드리 헵번, 클레오파트라, 힐러리 클린턴, 윤여정, 프리다, 마더 테레사, 프레디 머큐리로 바꿔 완벽한 웃음 코드를 만들었다.



"Easy Peasy"

역시 미국! 시리에게 물어보고 유튜브에는 이상한 이탈리아 요리사 '루이'가 나온다. 버터 정제하는 거, 마지막에 주문하는 것도 전부 시리와 대화한다. 한국 버전에는 우리와 친숙한 백아저씨와 램지의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Big Fat No"

가사 중 스튜어트가 too british라는 말이 나오는데, 당연히 한국에선 표현할 길이 없다. 그래서 한국 버전에는 스튜어트를 느끼 뻔뻔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스튜어트의 연기와 말투 또한 그에 비슷하게 연출했다. 그리고 ㄱㄸㅌ도 실제 가사를 들으면 K패치가 진심 완벽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참 이걸 쓸 순 없지만



"He Lied to Me"

크리스가 "나는 엄마가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장면도 브로드웨이 장면은 훨씬 심플하지만, 크리스의 이 발언이 웃음 버튼이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다니엘이 "요금 기계에 돈 넣고 오겠다(feed parking meter)"고 말하는 것을 "차 좀 빼주고 오겠습니다"로 탈바꿈했다.




단 1회 관극으로, 작품이 주는 감동이나 다른 요소를 깡그리 무시한 채 판단하는 일부 관객들은 이 후기를 보지도 않을 테지만, 암튼 난 참 좋은 작품 같다. 


더욱 예쁘게 다듬어져서 지금보다 더 큰 감동과 메시지, 무엇보다 웃음과 기쁨을 주는 그런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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