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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난슬 Feb 16. 2022

첫 출근 직전의 마음

손끝에 묻은 피를 본다. 방금 손가락이 뜯은 입술에서 나온 것이다. 아랫입술에서 짭짤한 피 맛이 느껴진다. 평안하지 않을 때 난 간혹 이런다. 더 예전에는 손톱 끝의 거스러미를 뜯었는데 이건 너무 고통스러워서 관뒀다. 입술을 뜯는 건 비교적 만만한 고통이라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여러 강박적인 행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멈춘다. 불안할 때마다 이러는 나를 제삼자의 눈으로 자꾸만 보게 된다. 눈에 비친 내가 너무 허무해 보인다. 덜 채워진 속이 겉까지 드러나는 것이다.



요즘은 열다섯 시간씩 자고 있다. 그러려고 마음을 먹은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밤에 누우면 지체없이 잠에 드는데 낮에도 똑같이 별문제 없이 잠든다. 밤에 넘치도록 잤는데도 낮에 몸을 좀 움직이고 나면 하염없이 졸리다. 잠을 자지 않을 이유와 잠을 자야 할 이유 중 더 많은 건 자지 않을 이유인데 난 매번 그냥 자버린다. 잠들기 직전 몸을 감싼 이불과 푹신한 베개의 감촉이 너무 좋다. 겨울이 떠나지 않아서 두꺼운 이불은 여전히 침대 위에 있다. 안 잘 자신이 점점 사라진다.



덜 자기 위해 일정을 만들었다.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를 살펴보았다. 구인·구직 어플은 늘 휴대폰에 깔려있으나 그 어플을 들여다보는 건 몇 번 안 된다. 들어갈 때마다 주눅들기도하고 스크롤을 내리기만 하다 지치기 일쑤라 그렇다. 시작하기 전에 덜컥 겁부터 먹는 걸 알아서 용기를 냈다. 지원 버튼을 누르고 며칠 뒤 시간제 아르바이트 면접에 합격했다. 꾸준히 약을 먹은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정신과 약은 모자란 용기를 기회와 가능성으로 끌어다 주는 수단이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금방 그만두게 될지 꾸준히 하게 될지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아는 게 없다. 바라는 건 그저 너무 과한 스트레스가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요즘은 용기가 조금 축적되었는데 아직 완전히 나아지진 않아서 병원에 들러 약을 증량했다. 출근길의 내가 여태까지 처음을 시도한 어린 나처럼 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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