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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자유인 Jun 10. 2021

능력주의는 정말 정의로운가?

공정을 넘어 정의로

한국은 얼마 동안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말이 통할 정도로 사회적 이동성이 보장된 사회였다.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서 교육은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확실하게 담보해 주는 수단이었는데 대학 입학, 특히 명문대 입학은 안정된 직장과 보다 많은 소득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25~64세 국민 중 50.0%가 대졸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 대졸자 비율을 보면 캐나다가 59.4%로 1위를 차지했고, 뒤를 이어 일본(52.7%), 룩셈부르크(51.6%), 이스라엘(50.2%)에 이어 한국이 50.0%였다. 참고로 미국은 대학 학위를 갖지 않은 사람의 수가 전체 인구의 2/3에 달한다. 오바마는 대통령 재직 당시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자주 언급하며 미국도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 진학을 통해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오르라고 주문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하면 된다’(You can make it if you try)라는 구호를 연설이나 공식 발언 등에서 140회 이상 써먹은 점을 떠올리면 그가 어떤 맥락에서 ‘사회적 상승 찬가’를 읊조렸는지 알 수 있다. 오바마의 이 말은 전형적인 능력주의 찬가였다.     


한국에서 이제는 오바마가 그토록 칭송했던 높은 교육열이 더 이상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확실하게 담보해 주지 못한다. 한국의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여러 통계에서 나타나듯 부모의 부와 학력이 자녀 세대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다이아몬드수저, 금수저, 흙수저 등의 ‘수저론’은 사회적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단절된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 및 월스트리트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연봉은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을 넘는다. 한국 사회의 재벌이나 정상급 연예인들의 수입도 보통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많다. 타고 태어난 신분으로 귀족과 노예 및 일반인으로 정해지는 귀족제 사회에 비하면 현대 사회는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 훨씬 상승했다. 전 세계적으로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다수 나라의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노력과 재능만 뒷받침되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는 ‘능력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아메리칸드림은 능력주의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재능이나 노력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는 능력주의는 정말로 정의로운가?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정치철학)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폐해를 심층 해부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으로서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자면 ‘능력주의의 폭정’ 정도가 될 것이다.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실현된다 하더라도 도덕적⦁정치적으로 폐해가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사회 개혁에 찬성하는 진보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능력주의를 지지하며 ‘기회의 평등’을 어떻게 하면 실현할 것인가에 주목하는데 샌델은 능력주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신분에 따라 지위와 명예가 결정되는 귀족제 사회에서는 소위 금수저도 능력이 아니라 신분 덕분에 그 자리를 차지한 점을 인정하고 덜 교만해한다. 설령 노예로 태어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분 때문에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며 모멸감과 자괴감을 덜 느낀다고 샌델은 말한다. 하지만 노력과 재능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자기 성공을 당연시하며 지나친 오만에 빠져들고 성공에 작용한 우연적 요소나 행운을 과소평가한다. 샌델은 “우리가 가진 몫이 운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보다 겸손해진다. ‘신의 은총 또는 행운 덕분에 나는 성공할 수 있었어.’ 그러나 완벽한 능력주의는 그런 감사의 마음을 제거한다. 또한 우리를 공동운명체로 받아들이는 능력도 경감시킨다. 우리의 재능과 행운이 우연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때 생기는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그리하여 능력은 일종의 폭정 또는 부정의한 통치를 조장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또한 능력주의 사회에서 패자는 승자가 가진 것과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자신의 신세도 노력과 재능이 부족한 결과로 받아들이면서 깊은 패배감과 굴욕감을 안고 살아간다.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 전체에서 일관하여 능력주의가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안긴 점에 주목하며 사회적 상승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존감을 회복하여 스스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은 20년 이상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보다 높은 자살률을 보였으며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은 OECD 27개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인 10만 명 당 11.3명보다 2배 이상 높은 24.6명을 기록했다. 한국은 2019년 자살한 사람이 1만 3799명으로서 하루 평균 37.8명꼴이었다. 한국의 참담한 자살률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오를 수 있다고 믿었던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간격이 넓거나 끊어졌고 사회적 안전망은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실현된다 하더라도 굴욕감이 내면화된 패자는 있기 마련이고 정의와 평등은 미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한국사회의 전 영역에서, 특히 정치권에서 시민의 미래를 시장이나 능력주의 신화에 방치하지 말고 분열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능력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방법에 대한 담론이 일상화되어야 우리의 미래는 보다 정의롭고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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