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어려웠던 나이였고, 그나마 익숙한 운동이 뭘까 고민했었나, 음, 사실 큰 고민 없이 학교 근처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태권도 도장에 가게 되었다. 아마도 그 시절 아이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 방식이었던, 어떤 장난감이나 달달한 맛난 것을 준다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전단지를 보여주며 엄마에게 다니고 싶다고 했고, 엄마는 여기 다닐 거야?, 한 번 묻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기억은 아마도 첫날, 그전에도 태권도 도장에 다니긴 했으나, 사실 도복도 제대로 사지 않은 깍두기 같은 느낌으로 다녔기에, 입구 앞에서 어정쩡하게 도복을 입고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내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줄넘기를 대신 내 몸에 매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는 태권도 관장님의 딸, 나중에 중학교까지 나름 친하게 이어지던 인연이었지만,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고등학교 때 연락을 끊었다. 아무튼 그의 배려로 나는 흰띠가 서 있는 곳까지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다.
나는 그 태권도장을 4년이나 다녔다. 딱히 적성이 맞고 안 맞고 이런 걸 떠나,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공동체가 있었고, 나는 그 공동체를 꽤나 좋아했다. 사실 요즘도 태권도가 하나의 운동을 가르치는 걸 떠나서, 인성교육, 축구 교실, 줄넘기, 심지어 코딩이나 영어까지, 다양한 아동케어와 학습을 겸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예전에도 비슷했다. 물론 코딩이나 영어를 배우진 않았지만, 위에 말한 것에 더하여 주기적인 각종 체험학습을 겸하고 있었고, 학교 통학을 도와주거나 오후에는 그냥 학원에 오는 아이들에게 만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태권도는 그 시절 아이들에겐 어느 정도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4학년이 되자 머리가 커지며 자연스레 태권도는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래도 줄넘기만 따로 배우기 위해 1~2년 정도를 더 태권도장을 다녔다. 특정 요일, 태권도 시간에 줄넘기를 같이 배우긴 했으나, 줄넘기를 배우기 위한 수업도 따로 마련돼있을 정도로, 당시 줄넘기는 인기가 많았고, 직접 가르치던 사모님이 나름 자격증도 많이 갖추고 있던 능력 있는 분이라, 나는 민간단체에서 발급하는 1급 줄넘기 자격증까지 딸 수 있었다.
줄넘기를 배우면서 단순히 운동을 배우는 것을 넘어서 이런저런 갖가지 고민과 생각들도 많이 늘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엔 초등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줄넘기를 배우고 교내 대회까지 열 정도로 줄넘기 열풍이었는데, 나는 꽤나 줄넘기를 잘했다. 태권도에서 줄넘기를 배운 아이들이 다수 있었음에도, 언제나 반 대표는 나였고, 반 대표로 나간 대회에서도 항상 최우수 아니면 우수상을 탔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반대표로 나온 11명의 아이 사이에서, 다른 친구 한 명이랑 공동 일등을 했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숨이 엄청 차고 시야가 흔들려 헉헉거리는 와중에도,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충분히 느껴졌고, 거기에 1등을 하고 모두 대단한 듯 쳐다보는 표정으로 약간의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며 다른 여러 부분에서 또래 아이들에게 뒤처지는 일이 생겨도, 줄넘기만은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4학년, 태권도학원에서 전문적으로 줄넘기를 배우고 자격증을 도전하는 과정에서 이런 자부심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당시 처음 3급을 도전하던 시절에도, 같은 나이에 1급을 도전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 친구는 정말 줄넘기를 잘했는데, 가르치는 사모님도 대단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주 초반에는 이 친구를 조금 질투하기도 했었지만, 금방 그런 생각을 접었다. 질투도 능력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을 때 하는 거지, 이 친구는 더 높은 학년, 아니 어른들과 같이 비교해도 거의 논외였다. 비교 대상이 없었다. 그나마 다른 아이들은 충분히 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친구는 그런 생각조차 잘 안 들었다. 모두가, 심지어 사모님까지도 이 친구를 논외로 생각했다.
나는 주변보다 내 한계에 도전하고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다른 아이들을 통해 경쟁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당장 내가 뭐가 부족한지 계속 생각하면서 그것을 이겨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이겨낼 때마다의 고양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까. 당시에 가장 큰 걱정은, 다리가 잘 안 올라간다는 것이었는데, 때문에 나는 매일 수업 시작 전에 사모님과 대략 5분 동안 다리를 찢었다. 고통에 눈물이 조금씩 올라오는 걸 참으며, 하나씩 숫자를 세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시험 당일 시험관에게 결국 다리높이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더 힘차게 더 높이 다리를 올렸음에도, 나는 그 말 앞에서 결국 조금 울먹이고 말았고, 당황한 시험관에게 사모님이 나의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시험은 붙었다. 열심히 한 결과, 다른 종목에서는 준수한 성적을 받았고, 그것은 특정 구간에서의 부족한 자세를 충분히 메꾸고도 남았다. 시험을 모두 마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몇 학생에게 부상으로 공인 줄넘기를 나눠주었는데, 나는 그렇게 우수한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줄넘기를 받았다. 시상 마지막, 아, 그리고 아까 다리 잘 안 올라갔던 친구, 라고 하며 나를 불렀을 때, 나는 불과 몇 분 전에 울먹였던 것도 잊은 채 앞으로 달려 나가 줄넘기를 받았다. 말을 너무 부정적으로 했던 거 같아서, 신경 쓰였어요. 잘하고 있으니까, 기죽지 말고 계속해서 다음 급수도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시험관은 내 머리를 쓰다듬지는 않았지만, 거의 그 정도의 표정과 말투로 나를 기특한 듯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그때의 느꼈던 기분을 아직 기억한다. 누군가에겐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당장 나에게 어려웠던 일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그것을 인정받았을 때의 기분. 나는 시험관 말대로 계속해서 다음 급수에 도전하면서, 최고가 아니더라도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하며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아마도 그때의 성취 경험이, 오늘날까지 살아오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 더 많은 성장과 긍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배우지 않았을까. 현재에 와서 그때만큼의 도전 정신과 격정 어린 감정으로 임하는 자세는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내 가슴 한편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