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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Nov 07. 2022

안에서는 엄마, 밖에선 형수

남편 없는 하루, 무사히 보냈다는 마음으로

 

 지난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부부가 운영하던 간판 가게를 홀로 맡게 됐다. 정신없이 장례를 끝내고 주변분들은 모두 우리 가족들이 간판 가게를 정리할 거 생각했다. 나도 그랬다. '간판'이라는 단어 속에는 찬 바람이 휑하게 부는 겨울에도 위태롭게 사다리를 타고 작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서였다. 외부 작업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지긋지긋한 현장 일이 간판 일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4월 말부터 쉼 없이 일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한창이던 시기를 지나 점차 영업시간 제한이 풀리던 시기였던 탓이었다. 2년간 없던 일이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이 쏟아졌다. 아버지와 함께 간판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는 디자인 등 주로 사무 업무를 봤다. 집안일처럼 바깥 일도 부부가 자연스럽게 업무 부담을 해왔다.


 어머니가 시공 현장에 가서 견적을 낼 때면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큰 공사를 앞두고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현장 시공 일이야 아버지가 있을 때도 그때마다 인력을 쓰긴 했지만, 전체 일을 직접 챙겨야 하는 일은 누가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부모님이 간판 일을 하실 때 인연을 맺게 된 지인 분은 아버지가 병원에 지낼 때부터 간판 일을 도왔다. 그분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조카'라고 했고, 어느덧 나 또한 그분과 조카 삼촌처럼 지냈다. 아버지가 사경을 헤맬 무렵 삼촌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아버지가 떠날 수도 있는 날들을 마음 한 구석에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과 핏줄은 아니지만 삼촌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 우리 가족을 돕고 있다. 


  "형수, 현장 일은 어떻게 해야 돼?"

삼촌이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형수다. 이따금씩 아버지가 없는 가게에서 어머니가 우울해질 때면 '형수'라고 부르면서 말을 걸었다. 어머니에게 형수라는 호칭은 들을 때마다 애달펐다. 형이 있어야 형수가 있는 것인데, 지금은 세상에 형수 밖에 없다. 삼촌은 어머니가 갑자기 현장 일을 해야 할 때 일손을 보태줬다. 정신없이 지나간 몇 개월을 되새겨보면 참 감사한 분들이 많다.


 그러고 보니 간판 가게 근방에는 에어컨, 싱크대, 유리, 인테리어 사장님들이 계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동안에 남들과 친목을 다지는 걸 좋아한 덕분인지 10년 넘게 알고 지낸 분들이다. 아버지가 있을 때에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나눴다. 아버지가 떠났지만 여전히 주변 사장님들도 몸을 써야 하는 작업이 있을 때면 선뜻 도와주신다. 


 "형수, 오늘은 뼈해장국 먹으러 가죠."

 사장님들 가운데 유독 살뜰히 챙겨주시는 분이 있다. 같은 건물에서 공장을 하고 계시는 분인데 1년 전에 내가 무인카페 인테리어를 할 때도 도움을 주셨다. 사장님은 회사 일만 하다가 처음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연 나에게 축하한다며 흰 봉투 속에 축하금을 넣어주시기도 했다. 그 사장님은 때때로 내가 없는 점심때가 되면 다른 사장님들과 함께 어머니와 점심을 드시러 가신다. 다가오는 12월에 사정이 생기셔서 다른 곳으로 가게를 옮기셔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무척이나 서운했다.


 환갑이 된 여자 홀로 간판 가게를 짊어지는 모습이 지인 분들에게도 편치는 않았을 거다. 2년 전 회사를 퇴직한 후 벌려놓은 일이 많아 어머니 일을 자주 돌보지 못해 죄송스러울 때가 많은데 형수를 걱정해주는 분들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인다.


 "엄마, 언제 집에 갈 거야?"

 간판 가게 근처에 사무실을 얻어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퇴근을 잘 하진 못한다. 일에 치일 때도 있고, 개인적인 약속도 있고….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가 혼자 있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가슴 한편에 밟힌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최대한 퇴근 시간만큼은 어머니와 함께하려고 한다.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가는 때엔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을 그래도 무사히 잘 지냈구나.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는구나.' 어머니도 씩씩한 형수에서 꾹 눌러 담았던 속마음을 털어놓는 엄마로 돌아오는 때다. 이따금씩 '아버지가 ~~를 좋아했는데'라고만 회상하는 어머니도 그제야 편안해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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